[새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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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기자
수정 2006-12-01 00:00
입력 2006-12-01 00:00

전생의 비밀 캐는 끔찍한 모험동화

“현실은 잔혹하고 잔인하단다. 마법이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야. 어른이 되면 더이상 요정 같은 것은 믿지 않지. 냉혹한 현실만 깨닫게 될 뿐….”

영화는 내내 이렇게 말한다. 환상 속에 빠진 아이도, 끔찍하고 소름돋는 상황 속에 놓인 어른들도 하나의 종착점으로 치닫는다. 잔혹한 현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El Laberinto Del Fauno)는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게릴라과 정부군이 대립하는 1940년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다. 군인의 아이를 가진 엄마를 따라 게릴라과 정부군이 맞닿은 숲 속에 오게 된 오필리아에게 그곳은 늘 벗어나고 싶은 두려운 곳이다.

오필리아의 유일한 탈출구는 환상이 만들어낸 요정 이야기. 요정을 따라 신비로운 미로의 중심으로 들어간 오필리아는 기괴한 모습의 판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에게 지하왕국의 공주였던 전생을 이야기하며, 마법열쇠 세 개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판의 지시에 따라 오필리아는 위험천만한 모험의 세계로 빠져든다. 미로 밖의 세상에서 벗어나 지하왕국의 공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판타지 영화는 내내 어둡고 음습하다. 잔혹동화라고 하는 것이 옳다.

환상이라는 것이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밝고 안락한 것이 아니라는 듯, 오필리아를 벌레가 가득하고, 끈적한 두꺼비가 있는 동굴이나 아이를 잡아먹는 창백한 괴물이 사는 집으로 몰아간다.

차가운 눈빛의 새아버지와 점점 약해져만 가는 엄마가 있고, 게릴라의 폭격이 계속되는 현실보다는 나은 곳이지만, 어린 오필리아에게는 모두 견디기 힘든 고통의 공간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환상과 현실을 힘겹게 오가는 오필리아의 모습에서 환상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비추는 듯하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꿈꾼 환상은 역시 악몽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 환상의 연결고리를 역설한다.15세 관람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06-12-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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