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문명과 도시] (18) 붉은색의 향연, 모로코 마라케시
수정 2006-09-12 00:00
입력 2006-09-12 00:00
이슬람문화연구소 제공
16세기 사아드 왕조가 발흥하면서 마라케시는 다시 제국의 수도가 됐고, 이때 유대인 집단 정착촌 ‘멜라’, 거대한 ‘모사인 모스크’,‘알리 벤 유스프 마드라사’ 등이 건축됐다. 그러나 알라위 왕조는 제국의 수도를 메크네스로 옮겼고 그곳의 궁전 건축을 위해 마라케시의 알 바디 궁전을 가져다 건축 자재를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알 바디 궁전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때부터 마라케시는 제국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쇠퇴의 시기로 접어든다. 이후 모로코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면서 프랑스 도시건설계획에 따라 마라케시에는 신도시가 지어졌고, 구도시인 메디나도 재정비됐다.
마라케시는 이제까지 본 다른 모로코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페스가 이슬람의 중심도시로서의 자부심과 초연함으로 가득차 있다면 마라케시는 베르베르 도시답게 자유분방함과 따스함이 묻어났고, 라바트가 수도답게 빈틈없이 꽉 짜인 도시였다면 마라케시는 흐트러짐 속에 조화를 이루는 모로코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카사블랑카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분주함이 가득한 도시였다면 마라케시는 훨씬 여유롭게 사막을 껴안은 아프리카적인 모습의 도시였다.
쿠타이바 모스크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자마 알프나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밤과 낮으로 바꾸어 가며 끝없이 펼쳐진다. 낮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민속축제를 벌인다. 기획되지 않은 거리 연극, 점쟁이들의 주술과 부적, 다양한 베르베르 음악들의 향연, 우리네 시골의 약장수들이 즐겨하던 재주넘기, 온갖 종류의 약재들을 판매하는 약장수들의 외침, 코브라 춤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뱀 부리는 사람들의 피리소리, 구구절절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목소리 높이며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흥분된 목소리. 이렇게 쉼 없이 계속되는 삶의 향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파는 물장수들로 이 광장을 꾸몄다면 밤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너른 광장을 가득 메운 포장마차들에서 번지는 연기와 민속악단들의 공연 소리는 하늘을 뒤덮고 또 가르며 모든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대화는 광장을 가득 채운다. 유네스코마저도 이 삶의 공간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마 알프나 광장은 우리 삶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광장을 지나니 메디나가 있다. 메디나는 예전에는 주거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시장으로 쓰인다. 이곳 메디나도 페스처럼 거미줄 같은 미로와 그 중앙에는 모스크를 품고 있다. 모스크가 삶의 중심에 자리잡는 방식은 이슬람 도시의 전형이다.
마라케시를 떠난 열차는 북으로 힘차게 달린다. 차창 밖으로 베르베르 전사들이 말을 타고 힘차게 북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의 스페인에 정착한 그들은 눈 덮인 아틀라스 산맥에 둘러싸인 마라케시가 너무도 그리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그라나다를 건설했고,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듯 그라나다에 붉은 색의 알함브라 궁을 건설하였다. 사하라를 넘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활짝 피우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세의 베르베르인들의 모습을 그리며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 마라케시를 떠났다.
이종화 명지대 교수·이슬람연구소 연구원
2006-09-1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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