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8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6)
수정 2006-08-30 00:00
입력 2006-08-30 00:00
제2장 四端七情論(26)
그러므로 퇴계가 유학사상 최고의 명제인 ‘격물치지’의 해석을 주희(朱熹), 즉 주자의 설을 따랐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즉 주자는 ‘격물치지’의 개념을 ‘사물에 나아가서 이치를 궁구하는 것(卽物而窮其理)’이라 하여 마음(心)과 이(理)를 둘로 나누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양명은 ‘사물에 나아가서 내 마음의 양지를 이루는 것(致吾心之良知於事事物物也)’이라 주장하여 ‘내 마음에서 양지인 천리(天理)를 이루면 자연적으로 사물도 그 이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마음과 이가 하나’임을 주장하였는데, 퇴계는 주자의 학설을 따라서 ‘마음에 이기(理氣)가 혼합되어 있는 현상의 인식을 반드시 거쳐야만 마음의 본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방법적 입장을 취하면서 왕양명의 이러한 공부와 인식의 과정을 무시하고 직접 본체에 나가 말하는 것을 허황된 이론, 즉 곤설(袞說)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퇴계도 주자의 학설에 따른 ‘격물치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퇴계의 오류를 부단히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퇴계가 워낙 거유였으므로 후학들이나 제자들은 감히 퇴계에게 이를 따지지 못하고 유야무야 대충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친 심성을 가진 고봉은 스승의 오류를 참지 못하고 서너 개의 조항을 김이정에게 전해주어 마침내 퇴계에게까지 이르게 한 것이었다.
퇴계의 치명적 오류는 주자가 말하였던 ‘이치는 감정이나 의지가 없고 계획함과 헤아림도 없으며 짓고 만들지도 않는다.(理無情意無計度無造作之說)’는 설만을 좇아서 이치를 사물(死物), 즉 ‘죽은 물건’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사물의 궁극적 이치에 이르는 것은 이성을 갖고 있는 ‘나(吾)’지 ‘이치가 어찌 스스로 지극한 곳에 이를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하였던 것이다.
‘이(理)’를 ‘사물(死物)’로 보는 퇴계의 치명적인 견해는 많은 후학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으나 감히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직 고봉만이 주자가 스스로 주석한 보망장(補亡章)과 혹문(或問)에 보이는 학설을 인용하여 퇴계의 그릇된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을 가했던 것이다.
즉 소주(小註)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퇴계에게 상기시켰던 것이다.
“‘어떤 이가 작용이 미묘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작용이 아닙니까.’하고 묻자 주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에는 반드시 작용이 있으니 어째서 그것을 다시 마음의 작용이라고 해야만 하겠는가. 마음의 실체도 이(理)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해당되지 않은 곳이 없고, 이가 없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작용은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릇 이(理)가 비록 사물에 있지만 작용은 실로 마음에 있는 것이다.’”
2006-08-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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