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7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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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8-25 00:00
입력 2006-08-25 00:00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3)


왕양명이 이룬 유학은 후세에 ‘양명학(陽明學)’으로 불리며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정통 유교사상에 어긋난다는 인식 때문에 이단시되어 사학(邪學)이라고까지 파면선고를 받은 것은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육구연으로부터 비롯된 양명학의 교의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송 대에 들어오면서 성리학이 싹트게 된 데에는 지금까지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논리에 한계와 염증을 느끼게 됨으로써 많은 유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온 인간의 이성문제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우주의 원리 같은 것에 눈을 뜬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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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인간의 현실적인 존재와 현상을 규명하는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이야말로 언제나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추구하는 개인의 몸가짐뿐 아니라 대인관계, 마침내는 국가통치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원리인 이(理)의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최고의 정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사회에 있어서 육구연이 주장하였던 ‘마음이 곧 이’라는 사상이나 이를 발전시켜 완성한 왕양명의 ‘성인의 도는 내 본성 자체만으로도 족한 것이다. 전에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이치를 추구하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라고 선언하고 ‘천하에 어찌 마음 밖에 일이 있고, 마음 밖에 이가 있겠느냐.’면서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라는 인간의 내면적인 자유를 구가하였던 왕양명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정통적인 유학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술(詐術)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육왕파’의 종지는 바로 불교의 선에서 주장하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심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곧 부처’라는 심법은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구경 중의 하나인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는 화두의 골수로 이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달마(達磨)가 양의 무제8년(520년) 9월21일,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동쪽인 중국으로 건너 온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면벽수도하던 달마를 찾아온 혜가(慧可)가 무릎까지 쌓인 눈 속에서 칼을 들어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버림으로써 달마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중국에 있어 2조가 되는데,‘제 마음이 편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하는 혜가의 질문에 ‘그 마음(心)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편안케 해주리라.’라고 달마가 대답하자 혜가는 한참을 생각한 후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달마는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는 그 유명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을 내린 후부터 선이란 곧 마음을 찾는 심법(心法)이란 종지가 골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심법은 혜가의 불법이 제3조인 승찬(僧璨)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6-08-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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