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 (603)-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9)
수정 2006-05-15 00:00
입력 2006-05-15 00:00
제3장 天道策(39)
율곡은 스승 퇴계가 주장하였던 ‘이기이원론’, 즉 말과 사람을 분리하는 것은 일찍이 주자가 말하였던 ‘숨바꼭질(迷藏之戱)’과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율곡은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즉 사단과 칠정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정(情)이며, 따라서 사람이 탄 말이 함께 길을 갈 때 이를 ‘사람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고,‘말이 간다.’고 말할 수 있듯이 이성과 기는 동체라는 사상이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불교에서 근대의 선승 성철이 제기하였던 ‘돈오돈수(頓悟頓修)’냐, 아니면 ‘돈오점수(頓悟漸修)’냐는 치열한 논쟁과 흡사한 유가의 논쟁이 퇴계와 그의 제자 율곡을 통해 이미 500여 년간 계속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돈오돈수’가 ‘단박 깨치고 깨치는 순간 단번에 닦는다.’는 뜻이라면 ‘돈오점수’는 ‘단박 깨치더라도 그것을 지켜나가며 차츰차츰 닦아간다.’는 뜻으로 그 어느 쪽이 절대의 불교적 진리일 수는 없듯이 불교에 있어 ‘돈오점수’를 연상시키는 퇴계의 ‘이기이원론’과 ‘돈오돈수’를 연상시키는 율곡의 ‘이기일원론’ 중 어느 쪽이 사람의 성리(性理)를 밝혀내는 궁극적 요체인가,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23세의 청년 율곡이 쓴 ‘천도책’의 문장 속에 이미 그러한 율곡의 철학이 기초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율곡은 ‘천도책’에서 ‘사람의 기가 바르면 천지의 기도 역시 바르게 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마음은 곧 기(心是氣)’임을 간파하고 있음인 것이다.
특히 정사룡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하고, 이렇게 하여 사방이 바로잡히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게 된다.(人君正其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四方 四方正則天地之氣亦正矣)”
천지를 안정시키고 모든 자연현상이 순조롭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우선 정치가 잘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최고 지도자인 임금의 덕이 하늘의 길에 부합되어 잘 닦아야 한다는 율곡의 주장은 유가에 있어 최고의 ‘군주론(君主論)’이었던 것이다.
물론 율곡의 ‘천도책’은 500여 년 지난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서 보면 지극히 미신적이며,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일축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상감설’은 비록 정치 최고 지도자인 임금의 올바른 치도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하더라도 자연현상과 인간 사회가 서로 상응해야만 천지가 평안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믿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실로 그렇다면 연산군 때에는 가뭄이 별로 없었는데 비해 성군으로 일컫는 세종 때에 극심한 가뭄이 자주 있었다는 이조실록의 기록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2006-05-1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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