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 (59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2)
수정 2006-05-04 00:00
입력 2006-05-04 00:00
제3장 天道策(32)
율곡의 답안지를 읽어 내리던 정사룡은 이 부분에 이르러 다시 ‘옳거니’하며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답안지의 내용은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자께서 심한 우레 소리(迅雷)에도 얼굴빛을 변하셨다.’라는 말은 논어의 ‘향당(鄕黨)편’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승께서는)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반드시 정색을 하셨다.(迅雷風烈必變)”
일찍이 중용에서 ‘정성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말하였던 공자였으므로 도덕 그 자체는 하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도덕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공자의 ‘천도(天道)’사상을 나타내고 있음인 것이다.
공자는 언제나 하늘에 기도드리는 자세로 살아 온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공자가 마침내 심한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자로가 하늘에 기도를 드리기를 요청하였을 때 공자가 자로에게 ‘그런 선례(先例)가 있느냐.’하고 물었던 데서도 드러난다.
이에 자로가 ‘뇌문(文)에 그에 관해서 위의 천신(天神)과 아래의 지기(地祇)에게 기도드려 빌었던 선례가 있다.’고 대답하자 공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나는 그렇게 빌어 온 지 이미 오래이다.(丘之禱久矣)”
이러한 공자의 태도를 인용하여 율곡은 인류가 낳은 성인 공자를 ‘심한 우레 소리에도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여 정색을 하였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사람을 하늘이 친 예를 들어 무을(武乙)과 이백(夷伯)의 고사를 인용하였던 것이다.
무을은 상나라의 25대 임금으로 매우 무도하여 하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폭군이었다. 그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그곳을 천신이라고 부르게 하고 우상을 섬겼다.
그 허수아비를 대신하여 자기와 장기를 두게 하고는 허수아비가 지면 온갖 모욕을 다 하였으며, 또 가죽주머니에 피를 담아 공중에 매달아 놓고 활로 그 주머니를 쏘아 맞히고는 하늘을 꿰뚫었다고 자랑하곤 하였다.‘사기’에 보면 무을은 뒤에 하(河)와 위(渭)나라 사이에서 사냥을 하다가 벼락을 맞고 죽었는데, 이는 하늘의 도를 거스른 죄 때문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백은 노나라의 대부로서 희공(僖公) 15년, 이백의 사당에 벼락이 쳐서 불이 나 다 타버렸는데, 이는 예에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하늘의 재앙이 내렸기 때문에 사당에 불이 났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공자의 원견지명(遠見之明)에서 비롯된 고사였던 것이다.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이다.”
정사룡은 감탄하며 말하였다.
마음대로 길게도 짧게도 할 수 있고, 그것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신통력을 발휘하듯 거자는 적재적소에 적합한 고사를 이처럼 절묘하게 인용하고 있음인 것이다.
2006-05-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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