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9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0)
수정 2006-05-02 00:00
입력 2006-05-02 00:00
제3장 天道策(30)
율곡의 답안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면서 뭉게뭉게 보기 좋게 일어나 곱게 피어올랐다가 깨끗이 흩어진다면 홀로 지극히 환한 기운을 얻어 성왕(聖王)의 상서가 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상서로운 구름(慶雲)인 것입니다.
참으로 백성의 재물을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고 노여움을 푸는 덕이 없으면 이것에 이르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 물과 흙의 가벼운 밝은 기운이 한갓 백의창구(白衣蒼狗)가 되는 것에 견주겠습니까.”
“백의창구라.”
‘백의창구’는 ‘백운창구(白雲蒼狗)’라고도 불리는 고사성어로, 직역하면 ‘흰 구름이 한순간에 푸른 개로 변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 급변하는 것을 비유하는 문장으로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712~770)가 친구인 시인 왕계우(王季友)를 위해 쓴 시 ‘가탄(可嘆)’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인 것이다.
두보의 벗 왕계우는 가난하였지만 학문을 열심히 하고 타고난 성품과 행실이 매우 바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어려운 살림살이를 참지 못하고 이혼하고 떠나버리자 집안 사정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왕계우를 매우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왕계우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두보는 품성이 단정한 왕계우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분하게 여기어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흰옷 같은데(天上浮雲似白衣)
잠시 푸른 개 모양으로 바뀌었네(斯須改幻爲蒼狗)
세상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데(古往今來共一時)
인생만사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人生萬事無不有)”
두보의 시에 나오는 ‘백운창구’란 고사성어를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답안지의 내용을 본 순간 정사룡은 다시 모골이 송연하여 중얼거렸다.
“천재다. 이는 하늘이 주신 재능이다.”
“어떻습니까, 대감어른.”
정사룡이 연방 신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리자 옆자리에서 다른 답안지를 관별하고 있는 양응정이 넌지시 물었다.
“군계일학이 아니겠나이까.”
“일학(一鶴)이 아니라 국사(國士)일세.”
국사는 원래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나라 안에 둘도 없는 선비’를 가리키고 있는 내용이었다.
일찍이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한신을 가리키던 대명사로 정사룡은 감히 그 성어를 빌려 답안지를 작성한 율곡을 ‘마땅히 온 나라가 섬겨야 할 높은 선비’로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2006-05-0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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