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실패한 신문시장
수정 2006-04-13 00:00
입력 2006-04-13 00:00
최근 신문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7∼8년 전만 해도 가구당 구독률이 6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40%로 뚝 떨어졌다. 이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같은 급격한 언론 환경 변화 탓도 있겠지만, 메이저 신문사들의 무차별 경품 공세로 신문시장을 황폐화시킨 데도 원인이 있다. 일부 신문들의 이전투구식 판촉 경쟁은 절대 독자 수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문의 독자를 빼앗는 악순환만 불러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양한 여론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여론 형성이 필수적이고, 그 역할의 일부를 신문시장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신문이든 기업으로서 신문사는 해당 ‘상품’이 겨냥하는 ‘주독자 타깃’을 설정하고 있다. 특정 신문의 시장 지배는 그 신문사, 구체적으로는 신문사 소유주·광고주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수용자에게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전파하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이데올로기가 여론 시장도 지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여론의 다양성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도 여론의 다양성 촉진에서 찾을 수 있다. 가진 사람, 기득권자, 현상 유지를 갈망하는 계층의 목소리만 증폭해서는 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덜 가진 사람, 사회적 약자, 현상을 타파하려는 계층의 작은 소리도 공론의 장에서 걸러 어떤 형태로든 국가 의사결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메이저 신문이 과점하고 있는 한국의 신문 시장은 여론 다양성이나, 새 독자 증대라는 면에서 이미 실패한 시장이다. 마이너 신문들은 취약한 재무 구조로 생존한계선을 넘나들고 있거나, 종교 자본의 뒷받침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강압과 회유로 언론이 정권의 하위 기구로 전락했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언론의 권력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국가 권력이 정당, 자본가, 시민사회로 분산되면서 언론사, 특히 메이저 신문들도 신문 시장의 과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의제 설정의 선점을 통해 권력화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메이저 신문들은 마이너 신문들도 신문시장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절제해야 하며, 신문이 공산품과는 다른 ‘공익적 상품’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마이너 신문들은 변화된 신문 환경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khlee@seoul.co.kr
2006-04-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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