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4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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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2-21 00:00
입력 2006-02-21 00:0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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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처음 만난 율곡의 모습은 의기소침하고 염세적이었다.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되는 것일까, 퇴계는 예리하게 율곡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였다.

마침내 퇴계는 율곡의 상심이 한때 금강산에 입산하였던 불교적 방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그러한 마음속의 어둠을 율곡 스스로 털어놓도록 짐짓 유도했던 것이다.

퇴계는 잘 알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은 오직 고백으로 가벼워지고 고백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그뿐인가. 고백이야말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묘약임을. 따라서 율곡이 퇴계를 찾아온 것이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의 형량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백할만한 상대를 발견하기 위해서였음을 비로소 퇴계는 깨달았던 것이다.

과연 율곡은 찾아온 첫날 하루 종일 자신의 사상적 갈등을 고백하고 이를 하소하였다.

그러나 퇴계는 이에 대해 가타부타 그 어떤 견해도 제시하지 않았다.

마치 주자가 스승 이연평을 처음 만났을 때 이연평이 ‘그것(주자가 선에 몰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만 짤막하게 대답하고 ‘다만 성현의 말씀을 보라.’고만 훈계하였던 것처럼 퇴계도 율곡에게 ‘다만 그것이 옳지 않다.’고만 대답하였을 뿐이었다.

율곡으로부터 모든 고백을 전해들은 퇴계는 마침내 율곡의 마음을 달래고 격려하기 시작한다. 율곡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퇴계가 선택한 방법은 주자 역시 10년 이상 율곡처럼 불교적 선에 몰두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주자 역시 불교적인 사상 갈등으로 고뇌하고 있었으나 마침내 학문적 오류에서 벗어나 유가의 종지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한때 율곡의 불교적 방황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퇴계의 따뜻한 격려내용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율곡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껍질을 찢고 무거운 허물을 벗은 듯 율곡의 표정은 밝아지고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앞으로 정진해 나가야할 학문의 방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곡이 머물렀던 2박3일의 짧은 기간은 실로 절묘하게 구성된 전3막의 연극무대와 같은 것이었다.

제1막이 율곡의 고백을 통한 기(起)였다면, 제2막은 주자와 간접적으로 비유함으로써 치유의 승(承)과 그리고 심기일전의 반전(反轉)이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제3막은 마무리의 결(結).

이 모든 드라마를 연출한 사람은 바로 퇴계.

퇴계는 2박3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율곡의 전 일생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마무리로 완성시킨 위대한 연출자이자 참스승이었으니, 율곡이 이처럼 젊은 시절 퇴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율곡은 불교와 유교 사이에서 사상적 방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자포자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2006-02-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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