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42)-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2)
수정 2006-02-17 00:00
입력 2006-02-17 00:00
제2장 居敬窮理(32)
주자는 자신의 참스승이었던 이연평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글은 주자가 이연평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 선학과 유학 사이에 사상적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율곡이 퇴계를 만나 2박3일의 짧은 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 율곡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었던 불교와 유교의 사상적 대립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주자가 ‘선에 대해서 말씀드리자 연평 선생이 다만 옳지 않다고 대답하였으므로 도리어 연평 선생이 아직도 이것(禪)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하였던 것처럼 율곡도 자신의 해박한 선학적 지식으로 유가의 교의를 접근함으로써 유·불을 통합해 보려는 관점에 퇴계가 다만 ‘옳지 않다.’라고만 대답한 것을 의심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이연평이 주자가 선학에 깊이 빠져 불교와 유교의 교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다만 성현의 글을 보라.’고 짤막하게 충고하였던 것처럼 퇴계도 율곡에게 별다른 충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퇴계는 율곡의 천재성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으므로 율곡의 학문적 모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율곡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법보다는 스스로 체득하여 주자로 하여금 유·불의 차이를 자각하도록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본 이연평처럼 퇴계도 율곡이 직접 성현의 글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성현의 말에 맛을 느끼고, 불교의 학설이 점점 파탄을 일으키고 이치에 맞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율곡에게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은 주자도 한때 불교에 심취하여 선에 몰두하였다는 전력이었을 것이다.
주자는 10년 이상을 선에 몰두하였다가 마침내 31세 때부터 이연평을 정식으로 스승으로 모시고 본격적으로 유학에 정진하여 유학에 있어 종주(宗主)가 될 수 있었으니, 그에 비하면 율곡은 1년 반의 짧은 기간동안만 선에 몰두하였을 뿐으로 이에 대해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 퇴계가 율곡을 위해 던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자가 이연평을 통해 학문적 방향을 바꿔 유학으로 나가는 계기를 얻은 것처럼 율곡도 퇴계와의 만남을 통해 불교적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유학으로 학문의 방향을 급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얻었다는 점일 것이다.
2006-02-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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