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3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수정 2006-02-09 00:00
입력 2006-02-09 00:00
제2장 居敬窮理(26)
1년 반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중에 상운정에서 자신의 소회(所懷)를 털어놓은 율곡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가을바람에 풍악(금강산)을 떠나,/ 석양 무렵 상운정에 당도하니, 모래 위에는 바위들 늘어섰고,/소나무 사이에는 길이 하나 나 있구나.
이 무렵 율곡의 고향 임영에는 외할머니 이씨가 눈이 빠져라 율곡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곡의 생애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외할머니 이씨.
흔히 율곡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을 율곡의 어머니였던 신사임당 한 사람으로 압축하고 있으나 오히려 율곡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꿰뚫어 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다. 이러한 사실은 세살에 불과한 율곡에게 이씨가 석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고 묻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때 율곡은 옛 고시를 인용하여 ‘석류껍질이 부서진 붉은 구슬을 감싸고 있네(紅皮囊裏 碎紅珠)’라고 대답함으로써 주위사람을 탄복시켰는데, 어쨌든 이 ‘석류시’가 율곡이 지은 최초의 절구이고 보면 율곡의 천재성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던 것이다.
이 무렵 외할머니 이씨는 76세의 노인이었고, 특히 4년 전에 사랑하는 딸 신사임당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있었으므로 간다온다 일체의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살아 돌아오는 율곡을 본 순간 미친 듯이 맨발로 뛰어가 율곡을 맞아들였을 것이다.
율곡은 이곳 강릉에서 한겨울을 지낸다.
이듬해 봄 또다시 강릉을 떠나 한성시에서 장원으로 뽑혔으니, 비록 한겨울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금강산에서 있었던 불자로서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의미 깊은 전환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목표를 곰곰이 생각한 후 그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아온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자신을 경책하는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는 뜻의 자경문은 불교와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글이며, 또한 다시 청산을 버리고 세속으로 환속하여 복귀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의 아폴로기(apology)였던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치열하게 외갓집에서 입산하기 전부터 계속해왔던 과거시험공부를 계속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듬해 봄 한성부에서 주관하는 한성시에 응모하기 위해서 율곡은 서둘러 한양으로 귀향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장원에 급제하여 화려하게 입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6-02-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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