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지강헌 사건을 영화로 옮긴 ‘홀리데이’에서 ‘지강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성재를 만났다.
정작 스스로는 몸에 쏠린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몸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답이 되돌아 왔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데다, 체중 줄이는 것도 서너달에 걸쳐 한 것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했다. 지강혁이 탈옥수라 뭔가 편해보이면 안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샐러드와 닭가슴살로만 버텼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단지 자신을 “조금 학대했을 뿐”이란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끝내고 나니 ‘영화가 뭔지’하는 생각에 그냥 눈물이 나더란다. 정말 배우가 뭔지 모를 일이다.
# 감정 조절이 힘들었죠
연기의 포인트는 감정누르기.‘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외치는 마지막 3분짜리 신에 모든 힘이 모이는 구도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사건들은 ‘최대한 드라이하게’ 갔다. 철거현장에서 동생(설성민)이 김안석(최민수) 총에 쓰러지는 장면도 간략하게(?) 처리했다.“동생이 총에 맞았다면, 그 순간만큼은 멍해지지 않았을까요.”김안석을 살려두는 것도 그런 설정 때문이다. 개인적으로야 동생의 원수지만, 지강혁의 시선은 이미 김안석 너머 한국사회를 향하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김안석과 지강혁이 어깨를 맞댄 채로 으르렁대는 장면도 마찬가지.“한마디로 무시죠. 내 상대는 네가 아니라는.”대신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음껏 내질렀다.‘액션∼!’소리에 확 끓어올랐다가 ‘컷∼!’ 소리와 함께 쓰러지기를 몇차례 반복했다.
#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그래도 연출은…
이성재는 현장 아이디어가 많기로 유명하다.“저도 이 바닥에 구른지 몇년 됐거든요.(웃음)찍다 보면 이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퍼뜩 스치죠.”마지막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사는 이성재가 직접 손질했다.“시나리오상으로는 너무 교훈적이고 진부했거든요. 제가 전체적으로 추린 뒤에 감독님이 마무리했어요.”또 마지막 부분에 이성재가 길을 걸어가는 장면도 그의 아이디어다.“그냥 지나가듯 한 말인데 감독님이 흔쾌히 받아주셨고, 거기에다 민수형이 구도까지 잡아주시더군요.”비지스의 홀리데이 원곡을 삽입한 것도 이성재의 제안으로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 제일 남는 것은 자기만족이란다.“이번 영화는 러닝 입고 셔츠 입듯, 하나하나 차례차례 그렇게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평가야 보신 분들의 몫입니다만, 저는 그래서 좋습니다.”
# 민수형 너무 좋던데요
여담으로 최민수와의 연기호흡을 물었다.“저하고 비슷하던데요.”이게 무슨 소린가. 관심이라고는 인물·영화·촬영뿐이고 촬영없으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꼭 닮은꼴이란다. 의외다.“민수형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려가 좋고, 또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에요.”찜질방 가서 계란도 까먹었단다. 김안석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금니로 계란을 까먹는 풍경이라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2006-01-1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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