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6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수정 2005-06-13 00:00
입력 2005-06-13 00:00
제3장 慕古之心
퇴계는 자신에 대해서 깊이 자성하였다. 이에 대해 퇴계는 ‘언행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병이 많아 사마시에 합격한 뒤부터는 더욱 벼슬에 나가려는 뜻이 없고 오직 부모를 받들고 몸을 보살필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백씨 중씨의 간절한 권고 때문에 다시 반궁(泮宮)에 유학하여 과거를 볼 계획을 세워 여러 달 힘을 힘써 보았으나 일에 많은 구속을 받게 되었다. 시끄럽고 분주함속에 살게 되니 정신이 어지럽고 휘둘리어 밤중에 생각해보면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과거에 합격되었으므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는 퇴계에 있어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이다.
48세 되던 해 죽령을 넘기 이전에 퇴계는 29종의 벼슬을 하면서도 이를 사퇴하여 물러가기를 한결같이 청하였으나 국가에서 퇴계를 원하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물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죽령을 넘어 부임한 풍기군수를 끝으로 경상도 감사에게 사직원서를 낸 이후부터는 허락도 없이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무단으로 행장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던 것이다.
허락도 없이 직책을 떠났다고 해서 경상도 감사로부터 2계급 강등처분까지 받았지만 이를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임금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입경하였을 때도 퇴계는 신병과 노쇠, 재능의 부족과 직책의 불감당, 염치 등 네 가지의 이유를 들어 사퇴원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퇴계는 49세 되던 명종 4년 9월에 감사에게 군수 사임장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70세가 되던 선조3년 9월에 최후 사장(今致 辭狀)을 올리기까지 무려 53회의 사퇴원을 낸다.
이것은 퇴계가 죽령을 넘을 때 느낀 대오 각성의 결심 때문이었다.
이때의 깨달음은 ‘무오사직소(戊午辭職疏)’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신이 비록 무식하오나 어려서부터 임금을 섬기는 도는 익히 들었사옵나이다. 이른바 ‘불사가(不俟駕:임금이 부르면 수레를 기다릴 틈 없이 바삐감)’가 임금께 공경을 다하는 일인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한 모퉁이를 고수하여 뭇사람이 비난하고 의심하는 속에서도 ‘물러갈 뜻’을 변치 않은 것은 그 나아감이 임금 섬기는 의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의란 무엇입니까. 일의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리석음을 속이고 벼슬자리를 도적질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까. 병든 몸으로 일도 못하면서 녹만 타먹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까. 빈 이름으로 세상 사람을 속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까. 나가서는 안될 것을 알면서 덮어놓고 나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까. 이 다섯 가지 마땅치 못함을 가지고 감히 조정에 나선다면 신하된 도리에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의 어리석음을 살피시고 신의 병든 몸을 가긍히 여기시어 전리(田里)에 물러가 있게 해주옵소서.”
2005-06-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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