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50)-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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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5-23 00:00
입력 2005-05-23 00:00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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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이 시는 일종의 선시(禪詩)이다.

퇴계가 노래한 대로 ‘다름없는 한 생각’이란 12살 때 발견한 ‘이’의 화두임을 알 수 있으며,‘이를 깨달아야만 마침내 성리학의 공부를 이룰 수 있다.’는 퇴계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10년 동안 퇴계는 한결같이 ‘이’의 한 생각에 전념하며 비로소 근원과 마주쳤음을 노래하였는데, 노래 중에 나오는 태허(太虛)란 용어는 북송의 학자였던 장횡거(張橫渠·1020~1077)가 주장하였던 ‘기일원(氣一元)’사상에서 나온 말이었다. 사상적으로는 불교를 배척하였으며, 우주의 만유(萬有)는 기(氣)의 집산에 따라 생멸, 변화하는 것이며, 기의 본체는 태허로서 태허가 곧 ‘기’라고 설법하였던 송나라 유학의 기초를 세운 사상가였다.

장횡거의 ‘태허는 곧 기’라는 사상은 소강절(邵康節·1011~1077)의 태극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교의 역철학을 발전시켜 역(易)은 음과 양의 이원(二元)으로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의 태극(太極)으로 주장하였던 수리철학(數理哲學)의 대가였던 것이다.

퇴계가 유교의 도를 깨달아 태허를 알아보았다고 노래한 것은 이미 19살 때 이들의 철학에 깊이 빠져 음과 양, 그리고 강(剛)과 유(柔)의 사원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이에서 파생되는 기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퇴계는 성리대전(性理大全)을 통해 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때 심경을 퇴계는 언행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19살 때 처음으로 ‘성리대전’의 첫 권과 끝 권 두 권을 얻어 시험 삼아 읽어 보았더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눈이 열리는 듯하여 숙독(熟讀)하기를 오래하여 점점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비로소 학문의 길을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학문의 길.

퇴계는 비로소 학문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일찍이 공자가 논어에서 ‘아침에 도에 대해서 들어 알게 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라고 말하였던 것처럼 자신이 득도(得道)하였음을 드러낸 말이었다.

‘성리대전’은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의 명을 받아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가 편찬한 책으로 송나라와 원나라의 성리학자 120여명의 학설을 집대성해 놓은 것이었다.

퇴계는 장횡거와 소강절과 같은 성리학자들을 바로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일종의 성리학 대백과사전이었는데, 퇴계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이 기쁘고, 눈이 열리는 ‘심안(心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퇴계가 얼마만큼 공부에 열심이었던가는 이 무렵 다음과 같은 고백을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

“내가 젊었을 때 이 학문에 뜻을 두고 낮에는 쉬지 않고 밤에는 자지도 않고 공부를 하다가 드디어 고질을 얻어 지금까지 병폐(病廢)한 사람이 됨을 면치 못하였다. 학자들은 나를 따라올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의 기력을 헤아려서 잘 때는 자고 일어날 때는 일어나며, 때와 곳을 따라 자기 마음을 살피고 헤아리며, 이 마음으로 하여금 방일(放逸)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나처럼 병이 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2005-05-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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