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칼럼] 개헌논의 정치과잉이다
수정 2005-02-17 00:00
입력 2005-02-17 00:00
개헌논의가 찬이든 반이든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개헌논의 자체가 정치과잉이란 이야기가 된다. 국민들이 체감하지 않는 문제를 직업 정치인들이 당위성과 필요성을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개헌논의의 필요성으로 700만 해외동포에 대한 참정권 부여 등을 들었다. 열린우리당의 이석현·정장선 의원 등은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통령제 도입을 통한 지역감정해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지자체장 선거의 연계 등이 정치권에서 개헌의 필요성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절차적이거나 지엽적인 것들이어서, 국민 입장에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점이다. 직선제 개헌 같은 국민적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개헌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4년 중임제만 해도 막상 논의에 들어가면 현직 대통령 처우문제서부터 벽에 부닥치게 된다. 현직 대통령이 중임제개헌에 찬성한다면 자신의 임기 5년을 4년으로 단축하는 대신 중임의 혜택을 받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기를 준비해온 여권의 유력주자들과 야권의 주자들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게 된다. 현직 대통령이 5년의 임기를 채우는 대신 중임조항은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아무 소득도 없이 자신의 임기중 상당기간을 개헌문제에 소진하는, 손해 보는 장사가 돼 어렵다.
여권 일각에서 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것도 국민들에겐 너무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언급한 개헌도 분명하진 않지만, 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렛대로 하는 인상이다. 대통령과 총리를 따로 뽑는다는 것이 정파간에는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위적이다. 그렇다면 이 역시 개헌에 필요한 동력을 충분히 갖기 어렵다.
개헌논의가 국민적 흥분을 끌어내려면 역시 대통령제의 폐해를 들어 내각제로의 전환 같은 권력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져야 한다. 내각제로의 전환을 제기하고 토론을 하다 보면 절충안으로 분권형대통령제 같은 것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 어느 한쪽에서 작심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내년이면 대통령선거가 정당의 현안이 될 텐데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이를 제기할 성싶지 않다. 이래저래 개헌은 국회만 벗어나면 어렵다.
내각제개헌을 제기할 용기가 없다면 개헌은 묻어두는 게 낫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우리의 가장 큰 과제다. 여기에 국가역량이 투입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일도 개헌보다 크다. 북한 핵문제도 중요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처방전이 나온 뒤에 그 결과와 필요에 맞춰 개헌을 논해야 한다. 모처럼 국민들이 정치를 잊으면서 나라와 경제가 제자리를 찾으려는 참이다. 급할 것 없는 개헌논의가 편안함을 깰까 두렵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2005-02-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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