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223)-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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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1-17 00:00
입력 2004-11-17 00:00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자로가 공자를 수행하고 길을 가다가 뒤처져 스승의 일행을 잃어버렸다. 공자의 행방을 찾고 있던 중 막대기에 대바구니를 매달아 걸머지고 걸어가는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자로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께선 저희 선생님을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하였다.

‘선생이라니 도대체 누가 선생이란 말이오.’

노인은 들고 가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두고 풀을 뽑으며 말하였다.

‘사지를 움직여서 일도 하지 않고, 오곡(五穀)을 나누어 뿌리지도 않고 이를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누가 선생이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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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손을 모아잡고 공손히 서 있었다. 노인은 자로를 집에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묵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고 또 자기의 두 아들을 만나게 하였다.

다음날 자로가 공자에게 돌아와 사연을 얘기하자 공자는 ‘숨어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는 자로로 하여금 되돌아가 그 노인을 찾아보도록 하였다. 그러나 자로가 가보니 노인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없었다.”

이 일화의 테마도 공자가 노자의 도가사상을 따르는 숨어 사는 사람들로부터 ‘사지를 움직여 일도 하지 않고, 오곡의 씨도 뿌리지 않는 게으른 지식인’으로 멸시를 당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공자가 같은 은자인 장저와 걸닉으로부터 ‘천하를 주유하면서 나루터도 모르는’,‘자기 마음에 드는 군주를 찾아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멸시를 당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장면에서도 스승에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낱낱이 고하면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자로의 교활한 속셈이 엿보이는 것이다.

노인이 공자를 ‘사지를 움직여 일도 하지 않고 오곡도 구별하지 못하는 백면서생’으로 비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로가 그 노인이 자신을 데려가 하룻밤을 편안하게 재워줬을 뿐 아니라 두 아들까지 만나게 해주었다는 가족적인 인간애를 발휘하였음을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공자가 주유열국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그동안 제자들은 자기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정에 굶주려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객지생활 동안 공자는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아내 기관( 官)과 아들 공리(孔鯉)를 그리워하였을 것이다. 공자의 생애 중 그의 가족에 대한 기록은 아주 짤막하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아내 기관씨는 일찍 죽고, 공자는 외아들 공리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편하게 묵고 노인의 두 아들까지 만나고 왔다는 자로의 말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공자의 마음을 갈갈이 찢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자로는 공자에게 노인으로부터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굳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갈갈이 찢긴 공자의 마음에 불까지 지르는 잔인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 무렵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궁핍한 생활에 지쳐 있었다. 불안한 정세에 이 나라 저 나라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도망쳐 다니기에 바쁠 뿐 먹고 사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의 걸인과 같은 모습을 보는 공자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생면부지의 숨어 사는 노인이 자신에게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는데 평생을 믿고 따르는 스승 그대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먹여주고 어떻게 재워주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준엄한 질책이 바로 자로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불만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2004-11-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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