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178)-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수정 2004-09-10 00:00
입력 2004-09-10 00:00
제2장 老子와 孔子
어쨌든 이로써 노자와 공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견만을 확인한 후 짧게 끝이 나고 만다.공자는 노자에게서 ‘용과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다시 자신의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러한 양극의 길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노자와 헤어진 후 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왔는데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태도와는 달리 노자는 공자를 만난 후 무위의 도를 한층 더 닦게 되어 세상 속으로 숨을 것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사마천은 이러한 노자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노자는 자신을 숨김으로써 이름이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산속 어딘가에 매화나무가 활짝 피어 있으면 아무리 자신을 숨긴다 해도 산 전체에서 매화의 향기가 나는 법.노자는 숨어도 숨어도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을 깨닫자 마침내 영원히 은둔 생활에 들어가 차라리 신선이 될 것을 결심한다.이리하여 마침내 세상을 등져 사라지려 하는데,이러한 노자의 모습을 사마천은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노자는 오랫동안 주나라에 있었으나 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그곳을 떠나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함곡관(函谷關).
이는 산관(散關),혹은 옥문관(玉門關)으로 불리던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 허난성(河南省) 북서부에 있어 동쪽 중원에서 서쪽의 관중으로 통하는 관문을 가리킨다.중국 화북지구 남부 황허 연안에 있는 교통과 군사상의 요지이다.
황허강 남안의 링바오(靈寶) 남쪽 5㎞ 지점에 있는 이곳은 동서 8㎞에 걸친 황토층의 깊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양안(兩岸)이 깎은 듯 높이 솟아 있고,벼랑 위의 수목이 햇빛을 차단했기 때문에 한낮에도 어두워 그 모양이 함처럼 깊이 깎아져 있어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예로부터 관동과 관서를 구분할 때의 경계를 가리키는 꼭지점인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노자는 소를 타고 이 계곡을 지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선계로 들어가려 했다는데,노자가 ‘한 사람만 막아서도 만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는 함곡관을 지나려고 했을 때 노자를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이곳을 지키는 윤희(尹喜)란 관리였는데,만약 윤희가 노자를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노자는 실제로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 용처럼 인류사에 있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수수께끼의 인물로만 전해오고 있었을 것이다.
이 극적인 장면을 사마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를 알아챈 관령(關令) 윤희가 노자를 붙들고 간곡히 아뢰었다.‘선생님,어디로 가십니까?’
소를 탄 노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손을 들어 계곡 건너편의 피안(彼岸)을 가리킬 뿐이었다.그러자 윤희가 말하였다.
‘진정 은둔하려 하십니까?’
‘그럴까 한다.’
‘언제 만나 뵙게 될지 모르는데 힘드시더라도 저를 위해 무슨 말씀인들 주시고 떠나가십시오.’
‘어허,이런 변고가 있나.나로서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데….’노자는 소 등에 올라탄 채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2004-09-10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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