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동화] 별꼴 사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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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4-09 00:00
입력 2004-04-09 00:00
“늑대다!”

누군가의 고함소리에,여름 숲속은 도망치는 발소리들로 어지러웠지.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지.늑대는 가장 느린 어린 꽃사슴을 물고 천천히 사라져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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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번에도 겨우겨우 살아 남았군!”

늑대가 자취를 감추자,검은꼬리사슴이 벌렁거리는 가슴을 자신의 앞발로 감싸안으며 숨을 몰아쉬었지.그때 토끼가 불쑥 나섰어.

“그런데…너희는 왜 도망가니?”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맞닥뜨린 토끼의 물음에 사슴들은 얼굴을 마주보았어.

“왜 도망가느냐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왜 도망가느냐니?”

“야,내 말은 말이야,그러니까….”

토끼는 답답하다는 듯 앞발을 마주 비벼댔지.

“아,물론 당연히 도망을 가야지.우리같이 아무것도 없는 동물들은.그렇지만….”

토끼는 부러운 듯 사슴의 뿔을 바라보았어.

“너희는 뿔이 있잖아! 아주 크고 멋진 그 뿔! 그런데 어째서 도망만 다니느냐고?”

사슴들은 또다시 얼굴을 마주보았어.그러고는 천천히 합창하듯 말했지.

“우린 말야,이 뿔을 남을 해치는 데는 쓰지 않아.”

“뭐라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토끼가 물었지.

“그렇지만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토끼는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

“내가 알기에 너희처럼 매년 새 뿔이 돋아나는 경우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것 같은데.그러니 뿔이 상할 것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테고….”

대답 없는 사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토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길을 돌렸지.

“참 이상하구나,너희들은.다른 동물들처럼,약하고 어린 사슴들을 가운데에 모아 놓고,뿔이 튼튼한 사슴들이 빙 둘러서서 맞선다면,웬만한 동물들은 덤벼들지 못할 텐데.그럼 조금 아까 같은 희생도 줄어들 테고….”

토끼는 자신의 굴을 향해 뛰어가면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지.

“정말 이상해! 그런 뿔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정말 알 수 없다니까.”

가을이 되었어.숲은 누렇게,더러는 붉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지.어디선가 들국화 향기가 바람에 슬쩍 얹혀 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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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이른 아침부터 뭔가 단단한 것들이 세게 부딪치는 소리에 숲 속 동물들은 아침잠을 설치고 밖으로 나왔어.

“아,저쪽 덤불 뒤에서 나는 소린데?”

“조심해! 조용조용히.어쩌면 위험한 일이 생겼는지도 몰라.”

청설모는 꼬리를 달싹이며 살금살금 가시덤불을 향해 앞장을 섰어.

“아니,저게 누구야?”

가시덤불을 헤치던 청설모가 외마디 소리를 냈어.

“뭔데? 누군데 그래?”

청설모를 밀어내다시피 하고,토끼가 가시덤불 틈에 눈을 바짝 갖다 댔지.그랬더니…사슴 여러 마리가 있었어.그런데,사슴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싸움을 하고 있었어.그것도 사슴,자기들끼리.

가장 몸집이 큰 사슴 한 마리와 약간 작은 사슴 한 마리가 서로 뿔을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었지.한참 동안 힘을 겨루다가 꽝,소리를 내며 뿔을 부딪치고 또다시 부딪치고….금세 작은 꽃사슴의 오른쪽 뿔의 가지 끝이 부러져 버렸지.

토끼의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어.

“저 친구들은 남을 해치는 데는 뿔을 휘두르지 않는다던데….”

“그래,물론 그렇지.”

굴 속에서 고개를 내민 들쥐가,딱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

“하지만 저 친구들이 지금 남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지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잖아.남을,다른 동물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토끼와 청설모는 거의 동시에 소리쳤어.그들은 들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야.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 아,아직도 몰라? 이 잘난 사슴 족속들은 정말 필요할 때,위기에 처했을 때는 냅다 도망쳐요.그리고….”

들쥐의 말을 토끼가 잘랐어.

“그리고 그 대단한 뿔을 자기들끼리 싸울 때,그때 사용한다는 말이야,지금?”

“그래.그렇다니까.이제야 내 말을 알아듣는군.”

들쥐가 고개를 끄덕였지.

부러움과 안타까움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서,지독하게 입안이 썼지.토끼는 씹어 뱉듯 말했어.

“쓸개빠진 녀석들! 자기들끼리 엉겨붙어 싸울 때만 뿔을 쓴다고,다른 땐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치고?”

작가의 말 사슴은 정말 쓸개가 없답니다.그리고 뿔은 자기 방어용이라기보다는 다른 용도,예를 들자면 짝짓기를 위한 결투용 같은 경우에 더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사슴은 참 재미있는 동물이지요? 우리 인간들만큼이나 말이에요.˝
2004-04-09 4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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