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동화]‘또 다른 쥐 한 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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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19 00:00
입력 2004-03-19 00:00
6000만년 전,지금으로 말하자면 남산의 꼭대기쯤 되는 곳.그 우거진 숲 속에서 쥐 한 마리가 허공을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어.꽤나 서늘한 눈빛을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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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난 이렇게 살지 않을 테야.절대로.”

몸집이 겨우 달걀만한,작은 그 쥐는 주먹까지 꼭 쥐었어.

‘무슨 일일까?’

작은 쥐의 표정을 본 토끼는 궁금해서 귀를 쫑긋댔어.하지만 차마 물어 볼 수가 없었지.그때 엉겅퀴 덤불 바로 뒤쪽에서 훌쩍거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어.

“누구야? 누가 울고 있지?”

토끼는 얼른 엉겅퀴 덤불을 뛰어넘었어.

거기에는 너무 울어서 눈알이 토끼처럼 빨갛게 되어버린 쥐 한 마리가 있었어.

“오늘 또 내 친구가 독수리에게 잡혀 갔어.사흘 전에는 우리 삼촌이,일 주일 전에는 누나가,그리고 열흘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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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쥐는 울먹이며 말했지.

“이제 우리 식구는 둘밖에 남지 않았어.나와 사촌동생 단 두 명밖에….”

그러고 보니 이 쥐의 몸집이 조금 큰 것 같기도 했어.토끼가 조심조심 물었지.

“저기 저쪽에 있는 친구가 네 동생이구나! 그래서 저렇게….”

토끼의 말에 그 쥐는 고개를 끄덕였어.

“내 동생은 이렇게 살지 않겠대.매일 쫓겨다니고,걸핏하면 잡아먹히고,이렇게 무력하게는 살지 않겠대.”

큰 쥐는 한숨을 내쉬었지.

“하지만 도대체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니.흔해빠진 뿔,아니면 날카로운 이빨,하다못해 누구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귀라도 뀔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너희는 재빠르게 달아날 수 있잖아?”

답답하기로 말하면 토끼도 마찬가지였어.남의 일 같지 않아 얼른 거들었지.

“도망이라….그래,그렇지….”

큰 쥐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지.

“불쌍한 우리들.기껏 할 수 있는 일이 도망가거나 새끼를 낳고 또 낳는 일밖에 없다니.잡아먹히고,또 잡아먹혀도 멸종하지 않도록….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운명인가 봐.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아무 능력도 없이.”

큰 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어.

“능력이 없으면 길러야지.”

단호한 목소리,어느 틈에 나타난 작은 쥐가 끼어들었지.

“그렇지만 어떻게?”

토끼와 큰 쥐는 합창을 하듯 물었지.

“우선 날개를 달아야겠어.”

‘날개를?’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

“족제비,뱀,부엉이,고양이,매….이런 사나운 동물들에게 포위된 아주 위험한 순간에 날개를 달고 유유히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야.비로소 적에게서 벗어나는 거지.그리고 다른 세계로,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거야.”

작은 쥐는 꿈을 꾸듯 말했어.

“하지만 어떻게?”

“우선 기도를 해야지.아주아주 정성껏.그리고 나는 연습을 하는 거야.이렇게,이렇게 말이야.”

작은 쥐는 어느 틈에 나무 위로 올라갔어.그러고는 앞발을 버르적거리며 뛰어내렸지.수십,수백,수만 곱하기 수십,수백,수만 번을.

작은 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어.

‘저러다 죽지 않을까?’

토끼는 겁이 나서 꽁무니를 감추었지.

‘저러다 죽지 않을까?’

지레 포기한 큰 쥐도 걱정이 되어 기도했어.‘작은 쥐의 소원을 들어 주세요.’라고.

‘하지만 해 아래 있는 날짐승들의 수가 모두 찼다.’

태초부터 계시던 보이지 않는 분이 작은 쥐의 귀에다 속삭이셨어.

‘그럼 전 해 아래 있지 않겠어요.밤에만 날아다닐래요.그럼 되지요?’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상관없어요.삶을 살아내는 것이,쫓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볼 수 없는 답답함쯤은 견뎌 내겠어요.’

꿈에서 깨어난 뒤,작은 쥐는 자신의 양 팔 사이에 검은 막이 돋아나 날 수 있게 된 것을 알았지.마침내 작은 쥐는 박쥐로 다시 태어난 거야.

수많은 시행착오 후에,박쥐는 입에 맞는 먹이도 잡을 수 있게 되었어.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지경이었지.

“저 불길한 검은색을 좀 봐.”

“도대체 새 편이야,짐승 편이야?”

“앞을 볼 수도 없다면서?”

온갖 동물들의 무성한 입방아 앞에서도 박쥐는 의연하지.스스로가 자랑스러웠거든.아직도 숫자 늘림으로 종족을 보존하는,그래서 한 쌍이 일 년 새에 1만 5000 마리로 번식하고,그러면서 남이 먹던 찌꺼기나 뒤져야 하는 쥐들에 비하면 살아 볼 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 거야.

그렇지 않겠어? 적어도 박쥐는 스스로의 생명과 자존심을 지켜냈거든.말처럼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고 말았거든.어쨌거나 말이야.

파랑새 어린이 ‘해내고야만 박쥐우화’에서<글 이윤희 그림 구분선>

작가의 말 자존을 지키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은 요즈음입니다.당찬 박쥐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2004-03-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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