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낙관론과 비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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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1-28 00:00
입력 2004-01-28 00:00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있었던 세계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을 모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권고안을 채택하였다고 한다.6월에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세계유산협의회 총회에서 그 여부가 확정되겠지만 여태까지의 관례상 권고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동시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만약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등재가 안 되고,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만 등재된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 우려했던 우리로서는 한 고비를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있든 북한에 있든 고구려 유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모두 등재된다면 좋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로마제국의 유적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 산재해 있으며,그 중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들이 여럿 있다.그러나 프랑스가 로마제국의 유적이 프랑스에 있다고 하여 로마제국의 역사를 프랑스 역사의 일부라는 주장을 하였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중국이 고구려의 유적이중국지역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만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한 데 반해 중국은 고분군뿐만 아니라 환인 지역의 오녀산성과 지안(集安) 지역의 환도산성과 국내성 및 광개토왕릉비 모두를 등재 신청했다.따라서 고구려 문화유산은 중국에 있는 유적이 중심으로 보이게 될 것이며,고구려의 중심마저 중국지역에 있는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물론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 문화유산의 등재와 상관없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의 고구려 유적과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이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함께 등재됨으로써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일 수도 있고,한국사일 수도 있다는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따라서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비관적으로 볼 것인지, 낙관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또 2001년 1월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라 낙관했다가 2003년 7월 보류된 적이 있다.이를 계기로 중국의 고구려사에 대한 왜곡 문제가 관심을 끌게 된 게 사실이다.그런 까닭에 이번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등재 신청이 수용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많은 논의와 지원이 학계를 중심으로 있고 알게 모르게 북한 고분군의 등재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낙관론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자만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비관론은 희망적이지 못해 어렵기는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결실을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반 잔의 음료수를 바라보며 반잔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반 잔이나 남았다고 만족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매사가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되 잘 안될지도 모를 경우에 대비하는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필요한 게 세상 일이다.



중국은 ‘동북 공정’을 통한 고구려사의 왜곡 이전에 평양 천도 이전은 중국의 역사이며 평양 천도 이후는 한국사라고 주장하였다.지금의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기준으로 현실적 목적에 따라 하나의 나라인 고구려사를 두 나라의 역사로 둔갑시키려 하였던 것이다.그런데 이제는 한반도의 급변하는 형세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에 따라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이러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설마’하며 방관하는 낙관론 입장에 설 것인지,역사 왜곡이 영토 문제 등 현재와 미래의 한반도 문제와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라 우려하는 비관론적 입장에 설 것인지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현재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역사 의식이 정말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 역사학
2004-01-2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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