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때 학벌 묻지않고 능력뽐낼 기회를 주죠”/‘학벌타파 실천’ 기업가 성완종 대아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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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1-24 00:00
입력 2003-11-24 00:00
최근 몇몇 공기업들이 학력·학벌을 묻지 않고 신입 사원을 뽑는다고 해 화제가 됐다.

민간 기업도 비슷한 방법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가 있지만,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홍보용’‘깜짝쇼’에 불과하다.

그런데 1985년부터 직원을 채용하면서 학력·학벌 철폐를 고집해 온 최고경영자가 있다.충청지역을 기반으로 착실하게 성장한 중견 건설업체인 대아건설의 성완종(52) 회장이 오랫동안 이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사람을 학력으로 평가해선 안돼

학력·학벌을 묻지 않는다고 외치는 회사는 많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알게 모르게 학력을 따진다.나아가 특정 학벌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만들어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현실이다.기업이라면 열심히 공부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을 우대해야 한다.인간 관계를 맺는 데 유리할 것으로 예견되는 일류대 출신자를 뽑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그래서 사내에 특정 학벌이 조성되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성 회장은 학력·학벌 철폐를 다르게 해석한다.그는 “학벌 철폐가 곧 학력무시로 비쳐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그가 말하는 학력·학벌 철폐는 이력서 한 장으로 사람의 전부를 평가하는 잘못된 관행을 버리자는 것이다.채용에 있어 누구에게나 똑같이 도전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 회장이 일군 대아건설은 건설업계에서 알아주는 알짜 회사다.그러나 81년 성 회장이 인수했을 때는 충청도 서산에서 지역 관급공사를 수주,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보잘것없는 건설사였다.사업장을 대전으로 넓혔지만 담합과 비리가 판치던 시절인 데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에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82년 서울로 입성한 뒤 95년부터 민간공사까지 손댔다.브랜드 가치가 조금씩 쌓여 지금은 토목·건축·주택·플랜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발전했다.

얼마 전에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경남기업을 인수,두 회사를 합칠 경우 12∼13위권에 드는 회사로 성장했다.고속성장에 대해 오해도 많았다.일부에서는 정치권과 손잡고 일감을 따낸다거나,성 회장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그러나 성 회장은 이를 부인한다.워낙 낙천적이고 감추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기업인·정치인 가리지 않고 만났던 것이 오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직원 70%는 꼭 지방대 출신 뽑아

경남기업 인수 당시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성 회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유를 묻자 “경남기업 인수를 단순히 회사의 볼륨을 키우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젊은이들에게 많은 일터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는 대아건설이 성장하는 밑거름은 지방 출신 직원들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이 회사는 85년 공채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하나는 직원의 70%를 지방대 출신으로 채우는 것이다.또 다른 하나는 직원들이 ‘베스트’할 때까지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성 회장의 ‘튀는’인사 원칙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성 회장 자신이 어릴 때 불우한 생활을 하면서 정규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기 때문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그는 시골에서 어렵게 대학 나온 젊은이들이야말로 건설사를 잘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겉으로는 다소 세련미가 부족하고 어리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건설업계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궂은일 마다않고 뛰어들며,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2가지 원칙을 지킨 결과는 대만족.건설업 특성상 환경·산재·공정거래·납품비리는 끊이지 않는다.그런데 대아건설 출신으로 이런 비리에 걸려든 사람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단다.

●장학사업으로 인재육성에도 앞장

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외환위기 때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일감이 없는 개발사업 파트 직원 80여명을 내보내야 했다.그러나 그는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했고,2년 뒤 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약속을 지켰다.

그는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인재를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90년에 만들어진 장학회의 기금은 100억원이 넘는다.지금까지 4000여명의 젊은이에게 70억원을 지원했다.

성 회장의 뜻을 이해한 몇몇 유지들이 장학회에 동참했지만,장학기금 조성의 대부분은 성 회장의 몫이다.개인 재산을 넣기도 하고 기업의 이윤을 돌리기도 했다.다른 장학회와 다른 점은 무조건 공부 잘 한다고 주는 돈이 아니라는 것.성적우수 30%,서민층 자녀 70%를 골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장학사업 동기를 묻자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었을 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그의 모친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25년간 교회 새벽종을 치던 ‘종지기’였단다.성 회장이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모친의 첫 마디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기업가가 되라.”는 당부였고,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금의 서산장학재단이라고 한다.

성 회장은 “대아건설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 젊은 사람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주는 것이 꿈”이라며 최근의 심각한 취업난을 안타까워했다.다음달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주는 2003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장학사업 부문)을 받는다.

류찬희기자 chani@

성완종 회장 약력▲ 51년 충남 서산 출생

▲ 91년 미국 퍼시픽 웨스턴대학 졸업

▲ 9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 96년 한양대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 99년 목원대 명예 경영학 박사

▲ 85년∼현재 대아건설 대표이사 회장

▲ 92년∼현재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 03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03-11-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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