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혼돈의 인류 구할수 있어”/서울대서 인문학포럼 강연 김지하 시인
수정 2003-10-18 00:00
입력 2003-10-18 00:00
김 시인은 “‘후천개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그는 “후천개벽은 종말이 아니다.선천(先天)을 부수고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천을 해체,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지금은 목적론적 진보주의가 끝나고 무엇인가 시작되려는 혼돈기”라면서 “인류는 내면·도덕적인 황폐에 시달리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김 시인은 또 “풍요로운 삶을 위해 ‘구라(입담이 좋다는 뜻의 속어)’라는 자극이 필요하며,백기완·황석영·김지하가 이 시대 3대 ‘구라쟁이’”라면서 “요즘은 구라가 너무 없어 메말랐다.구라 없이는 과학,예술,철학 다 안된다.”고 ‘구라론’을 펼쳐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이어 문명의 대전환 시대에는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나타난다는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나라가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시인은 그 이유로 지난해 6월 월드컵에서 젊은이가 보여준 힘을 꼽았다.그는 “월드컵 때 내가 본 것은 자신의 절실한 생활범주까지 버릴 수 있는 ‘결합’이었다.”면서 “반대되는 것도 경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이것이 ‘후천개벽’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김 시인은 “수줍어하지 말라.진리를 보고 가는 자는 길가의 똥무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지금 대한민국은 똥이 찼지만 가능성이 있으며,바로 여러분이 문예부흥과 문화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당부하며 강의를 끝맺었다.강당에서는 교수와 학생 100여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경청했다.김 시인은 2시간에 걸친 강연 직후 청중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이날 강의는 서울대 인문학 포럼의 문화계 인사 초청특강 형식으로 이뤄졌다.지난 4월에는 임권택 감독이 강의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2003-10-1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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