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물구경
기자
수정 2003-09-08 00:00
입력 2003-09-08 00:00
올여름엔 사흘거리로 비가 내렸다.서울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저녁,문득 내의 물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집이 떠내려간다고 울어댈 청개구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예부터 불구경과 물구경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없다지 않은가.
장대비 속에 천변으로 나갔더니,반갑게도 나같은 사람이 더러 있었다.이미 자전거도로는 보이지 않았고,불어난 짙은 흙탕물이 제법 요란한 소리를 냈다.지리산 자락의 고향마을은 해마다 홍수를 비켜가지 못했다.논둑에 세워둔 손수레며,돼지우리며,호박 등 농작물이 다 물길에 휩쓸려 간 적도 있었다.어른들의 억장 무너지는 한숨소리는 아랑곳않고 물구경에 정신이 팔렸던 천둥벌거숭이 시절-그 고향이 작고 나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양승현 논설위원
2003-09-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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