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성씨 英文 제각각인 것 보고 ‘로마자 표기법’ 연구하게 되었죠/200쪽 논문완성 홍승목 참사관
수정 2003-08-26 00:00
입력 2003-08-26 00:00
대법원에 파견돼 국제 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홍승목(50) 외교부 참사관은 25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에게 신라 향가 중 승려 득오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영어로 옮긴 글을 읽어보라고 권했다.한 구절 한 구절 쉽게 읽을 수 있었다.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연구했다.1차 완성한 연구 논문은 A4 용지로 200쪽을 넘어선다.우리나라의 지명과 성(姓),이름,한시 등 모든 분야의 표기법 원칙을 집대성했다.
●현재 표기법은 발음 어려워
외교관이 왜 복잡한 표기법 연구에 나섰을까.외교부의 한 동료는 홍 참사관에 대해 “인문 사회 모든 분야에 탐구심이 많고,공무원답지 않게 맛이 있는 사람”이라며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국제법 분야를 주로 다뤄온 경력,근원을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지적 호기심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지난 1990년 필리핀에서 영사로 근무할 당시 겪은 일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하루는 필리핀 이민국에서 연락이 왔는데,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성(姓)이 모두 다른데 한 가족이라고 우긴다며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이씨 성 형제들이었는데,제각각 Lee,Yee로 여권에 기재돼 있었던 거지요.”
홍 참사관은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은 다른 부처 소관이었지만 여권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부로서도 나몰라라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싶어 성씨 표기법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본부 국제법규과 조약과장으로 있을 때는 손을 놓고 있었다.그 뒤 1998년부터 4년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UNESCO·유엔문화교육기구)에서 근무하게 됐다.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현재 표기법은 외국인에게 우리식으로 발음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홍 참사관은 외교관 생활을 하며 만나본 많은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인들이 건네준 명함을 받아들면 상대방이 먼저 발음하는 것을 듣고 따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우리말표기가 외국인들에겐 겁을 줄 만큼 어렵다는 설명이다.우리의 우수한 한글을 외국 사람들에게 알리기는커녕,두려운 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
그는 이름 성씨 ‘권’을 예로 들었다.보통 ‘Kwon’으로 표기하는데,외국인들은 자음 K다음에 또 자음 w가 있으면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Kuon’이 맞고,문화의 경우도 보통 ‘munhwa’보다는 ‘munhua’가 맞다는 주장이다.
괜한 오해를 자초하는 경우도 꼽았다.이름 ‘갑식’의 경우 보통 ‘gapsik’이라고 표기한다.받침을 K로 끝내면 외국인들이 이름을 부를 때 힘을 주게 되고 군대의 부하에게 명령하듯 들리는 경우가 많다.gabsig으로 표기하면 부드러운 느낌으로 불려진다는 말이다.
서울(Seoul)이 외국인들에겐 계속 ‘세울’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했다.영어에선 eo보다는 ou가 친한 모음 조합이어서 Se(세)와 oul을 분리한다는 것이다.그는 애초에 ‘Sowul’이라고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은 연구지만 정책입안 보탬됐으면
홍 참사관은 엄연히 이 문제를 연구하는 부처가 따로있는데 주제넘게 월권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우려했다.그러면서도 우리의 향가·시조 등 문학작품을 로마자로 표기,유네스코의 각국 출신 직원들에게 발음하게 한 뒤 만든 실증적 연구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여권의 영문 표기 이름만이라도 통일했으면 한다는 그는 “제 연구가 쓰레기인지,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은퇴 뒤 발표도 하고 책을 내 정책입안자들이 참고하도록 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2003-08-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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