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동성애 주교 인준 / 美성공회 ‘왕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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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8-07 00:00
입력 2003-08-07 00:00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 주교 임명으로 미국 성공회가 자체 분열과 세계 교단에서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미국 성공회 주교회는 5일(현지시간) 투표를 통해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56) 신부를 뉴햄프셔 주교로 공식 승인했다.이날 표결 결과는 62대 45로 교단 내 첨예한 대립을 그대로 반영했다.

로빈슨 신부는 두 자녀를 둔 이혼남으로 13년간 동성 파트너와 동거해온 인물.미 성공회에 동성애 성직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자임을 공개하고도 주교로 정식 임명 된 사람은 로빈슨 주교가 처음이다.딸 엘라와 파트너 마크 앤드루가 지켜보는 가운데 로빈슨 주교는 교단에 감사를 표한 뒤 “하나님이 다시 한번 부활을 허락하셨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동성애가 성경 교리에 어긋난다며 강력 반대해온 미국의 교계 보수파들과 해외 주교들은 즉각 반발했다.로버츠 던컨 피츠버그시 주교를 비롯한 19명의 주교들은 이번 결정에 분명한 거부를 밝히고 “(이번 결정으로)미국 성공회는 스스로 전세계 성공회 신도들과의 분열을 선택했다.”고 비난했다.이들은 이어 영국 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에게 “긴급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

보수파 주교들과 신도들의 모임인 미국성공회위원회(AAC)는 앞서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오는 10월 텍사스에서 특별회의를 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각국 성공회에서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말레이시아의 림쳉인 주교는 6일 “(회교도가 다수인) 우리 같은 나라에서 이번 결정은 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교세 확장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했다.전세계 성공회 신도는 7700만명으로 미국내 신도는 230만명이다.

미국 보수파들이 탈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릴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다.그러나 완전 분파가 될 경우 무엇보다 교구 재산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미국 성공회의 세계적 영향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윌리엄스 대주교는 5일 성명을 내고 반대파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그는 “로빈슨 주교의 인준은 세계 성공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돌이킬 수 없이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지금의 사태 전개를 숙고할 기회를 가지길 원한다.”며 성급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박상숙기자 alex@
2003-08-0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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