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제대로 된 고전번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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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7-30 00:00
입력 2003-07-30 00:00
이런 일련의 작업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1980년대 초 번역의 식민성에서 탈피,우리만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바탕에서 출발해야만 주체적인 동양학이 가능하다는 몇몇 학자들의 목소리는아직도 요원하게 들린다.어떤 번역문학가의 말대로 ‘찢어하기 번역’‘대리번역’‘날치기 번역’ 등 무책임한 번역이 난무하는 우리 나라의 번역풍토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거론하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도 있다.심지어 국내 유수의 대학원에서조차 수업 시간에 수업 대체용으로 고전을 번역하고 그것을 교수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관행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번역본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번역자는 많아도 일급 번역가는 거의 없다는 서글픔은 천수백년 동안 우리 선현들의 학문적 동반자였던 ‘논어’나 ‘맹자’ 등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누구도 자신있게 추천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로 이어진다.최근에 이르러 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학술진흥재단의 고전번역지원 사업이나 과거 대우재단 후원의 번역총서 등 예외적 경우가 있다 해도,철저한 완역에 바탕을 두고 전편 해제와 각주,참고문헌이나 찾아보기 등을 제대로 갖춘 번역본을 얼마나 꼽을수 있을까?
우리는 중국고전번역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일본과 분석적이고 해체적이며 완전번역의 개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구미의 번역작업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중국에 못지않은 한문해독 능력을 보였던 선현들의 위상에 걸맞는 주체적 번역본을 탄생시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중국 고전번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사서삼경이나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및 25사(史) 등을 비롯한 정격(正格) 고전들의 완역본이 출간되어야 하고,무분별하고 불필요한 중복출판이 지양되어야 하며,기존 번역본을 인정하는 풍토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고전번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원전 해독력과 문화적 식견 그리고 지적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가능한 지적 문화사업이기 때문이다.만일 우리의 고전번역이 자생력을 키우지 못하고,원전해독을 소홀히 하고 중국이나 일본,구미 등에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하는 작업만 계속하려 든다면,중국고전의 번역본은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나’ 혹은 ‘우리’라는 주어가 빠진 중국 고전 번역은 동양학의 식민주의만 고착화시킬 뿐이다.
김 원 중 건양대교수 중문과
2003-07-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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