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마음속의 명당
기자
수정 2003-07-28 00:00
입력 2003-07-28 00:00
어쨌거나 풍수에서의 명당이란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어린 시절처럼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곳이다.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복 좀 받아보자는 의도를 가진 용어가 아니라는 말이다.머레이 북친의 지적과 같이 “현대는 총체적 신경쇠약이라 불릴 만한 불치의 인간 상황”이다.그러니 우리가 지금 명당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라고 할 만하다.그렇게 된 이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그렇다고 욕심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욕심으로 말미암아 문명의 발전이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문명이라든가 발전 같은 것은 좋은 면만 지니고 있을까?수많은 문명 비평가들은 “사람의 최대의 적은 바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미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썼다는 다음의 시는 경고 정도가 아니라 절망감까지 들게 한다.‘사람이 없었다면/오염도 없었을텐데/사람을 없애자/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집에 보면 이런 우화가 나온다.어떤 사람이 철로가 놓여 두번째 기차가 승객을 내려놓고 화물을 부리는 것을 보며 “발전해 가는구나.”라고 말했다.얼마 후 이 도시가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숲과 늪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딱따구리 한 마리가 외쳤다.“발전해 가는구나.” 이 경우는 사람과 딱따구리의 시각 차이에서 나온 반응이기 때문에 그 예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사람들의 시각차 또한 그에 못지않다.
최근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보면서 나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사람들의 견해 차이가 이토록 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환경론자들의주장과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개발론자들의 의견 대립이 바로 그것인데 어느 쪽 편을 들어야 잘 하는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환경론자들의 입장에서 그런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다.전주에서 8년을 살았기 때문에 전주에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그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왜 이 사업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그야말로 판단이 서질 않는다.어찌 해야 새만금이 명당이 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결국 모두에게 맞는 해결책은 없는 셈이다.할 수 있는 일은 선택뿐.명당은 당신 마음 속에 있다는 얘기도 이와 흡사하다.누구는 바닷가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 또 누구는 아담한 산간 계곡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바닷가에서 오히려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계곡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정말 하고 싶지 않은 얘기지만 지금 나는 회의에 빠져있음이 분명하다.군자는 생각하며 행동하지만 소인배는 생각만 하거나 행동만 한다더니 내가 지금 그 꼴이다.요즘 내 건강이 나빠져서 약해진 까닭일까? 이 또한 세태의 반영일지 모르지만.
최 창 조 전 서울대교수 풍수전문가
2003-07-28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