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에세이] 국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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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6-25 00:00
입력 2003-06-25 00:00
날씨가 더워지면 나는 언제나 2% 목마르다는 것을 느낀다.체내 수분이 빠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몸보신(?)을 생각하게 되는데,거기에는 언제나 탕(湯)이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의 음식문화의 중심에는 바로 국물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수 있다.

쇠고기를 잘게 저며 썰어 갖은 양념으로 푹 고아 낸 장국과 신선한 쇠고기 살과 뼈를 고아 끓여낸 곰국,삼 한 뿌리와 대추 그리고 찹쌀을 넣고 뽀얗게 우려낸 삼계탕 등은 한 여름 우리의 몸을 보양하는 강장음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던가.

국물 없인 아침상의 수저도 들지 않았던 까탈스러운 우리네 아버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것 역시 정성과 사랑이 가득 찬 ‘탕(湯)’이었다.

보통 상대방의 행동거지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국물도 없어!”이다.국물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의 많은 언어표현 중에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식(食)이 곧 생활의 중심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아침인사를 “밥 드셨습니까.”로 시작해서 “그래,밥은 먹었고?”로 저녁인사를 건네는 우리의 어머님에 이르기까지 먹는 일이 곧 사는 일이라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음식에선 “국물도 없어!”는 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국물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흔히 먹기 힘든 초계탕같은 귀한 음식을 접하게 되면 탕그릇에 남은 국물도 아까운지라,말끔히 비운다.아무리 진지한 눈빛으로 국물 한모금을 기대해도 한방울도 남겨주지 않는다.

본래 ‘식탐’이 ‘재물욕’ 못잖게 무서운 것이라고 하는데,솔직히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는 관대한 인내를 지니기란 여간 쉽지 않다.

경기가 어렵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최근 외식문화의 트렌드가 한식으로 바뀐다고 한다.그중에서도 서민의 허기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탕’집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시골장터의 넉넉한 인심과 풍성한 고기육수맛이 일품인 ‘시골집(02-734-0525)’,뽀얀 찹쌀과 닭 국물 맛이 빼어난 ‘삼계탕마을(02-596-7476)’ 그리고 놋그릇 가득 말갛게 우려낸 고깃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붓고 날계란을 하나동동 띄워 먹는 ‘하동관(02-776-5656)’의 추억어린 곰탕맛은 한여름 시원한 소나기처럼 서늘한 땀방울을 내려 줄 것이 분명하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현실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치고,사랑하는 일이 낯설고,먹고 사는 일에 스트레스가 많은 요즘,사발 채 들고 “후르륵!” 소리를 내며 ‘국물도 없이’ 먹어 보도록 하자.‘밥맛나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당신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

정신우 푸드 스타일리스트
2003-06-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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