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계석/한국정치의 진보와 보수란
수정 2003-06-24 00:00
입력 2003-06-24 00:00
보수 일변도의 사회에서 수동적·소극적·순응적 정치적 삶을 살아온 한국사람에게 참여정부라는 기치를 내세운 진보적 정권의 등장은 변화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심어놓고 있다.현재의 보수와 진보의 세싸움에서 국민적 정서가 진보성향으로 옮겨가고 새롭게 발전된 시스템이 작동된다면,그 갈등은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한 기폭제였다고 후대 학자들이 기록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보수적이다.이는 멀리는 유교적 전통,지정학적 위치 등에서찾아볼 수 있겠지만 가까이는 광복 이후 미군정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이승만의 보수 지배체제와 한국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이분법에 의해 흔히 규정되어 왔다.반통일·사대주의·친미·반북을 추구하면 보수이고,통일·민족자주·반미·친북을 추구하면 진보였다.정치철학적으로 보수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한국의 보수세력이 신봉하는 보수주의는 냉전반공주의 외에는 다른 철학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성격 규정이 어렵지 않다.진보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쟁이 있지만 진보 정당의 활성화를 통해 노동자와 민중에게 역사적 헤게모니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관점이 진보세력의 방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바람직한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다리에 의지하고 우뚝 서야 한다.보수라는 외다리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보이기조차 한다.
노무현 정권이 등장한 배경에는 강력한 변화를 바라는 서민,청년,노동자,대학생 등의 정치적 지지층이 있다.하지만 이들은 보수화 경향에 반발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지,진보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나 이성적 판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의 감성과 이미지 정치의 덕을 많이 보았지만 이성의 정치의 장에서 국민들의 변화의 열망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만일 진보세력이 호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한국정치에서 더 이상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될 위험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보수·진보 논쟁에서 간과하기 쉬운 집단이 이데올기 스펙트럼상에 중간에 위치한 자유주의 세력이다.보수세력은 냉전반공주의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을 진보세력으로 여기고,진보세력은 마르크스의 논리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을 보수주의로 몰아붙인다.그러나 자유주의자는 나름대로 차별성을 유지해왔다.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평등,인권을 불가침의 권리로 보고 그것을 존중하는 이념이다.시장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민주화 이전의 한국사회가 추구했던 것은 자유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였다.
보수주의가 한국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미친 것만은 아니다.시민사회의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고,노동자 계급을 탄압하고,분배를 왜곡시키기는 했으나 근대화,산업화,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반공주의에 기초한 보수주의는 비판적 성찰을 거쳐 합리적 보수주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진보정치는 합리적 보수세력,자유주의 세력,진보세력이 이성의 정치의 장에 참여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 발전이 가능하다.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친화력이 있고,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친화력이 있다면,자유주의를 중심으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양립할 수 있다.노무현 정부 아래서,진보세력이 급진적인 정책을 추구하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진보세력은 우선 자유주의 세력을 껴안을 수 있는 노선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보수세력도 극우 편향의 감정적 태도를 버리고 자유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03-06-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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