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며느리 생활 30여년 진달래술 비법 절로 터득했죠”/ 전통 진달래술 복원한 이 복 수
수정 2003-05-23 00:00
입력 2003-05-23 00:00
이같은 술 제조 비방은 어릴 때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충남 논산이 고향인 이씨는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진달래꽃을 딴 뒤 술을 담근 기억을 돌이켰다.“그때 할머니가 담그던 방법을 옆에서 거들면서 눈여겨 봐 두었지요.진달래술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은 시댁에 제사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21살이던 70년 결혼,서흥 김씨 종가의 맏며느리가 된 이씨는 자주 돌아오는 제사 때마다 직접 술을 담갔다.이렇게 30여년간 특별한 이름도 없는 술을 담그곤 했다.가게 손님들에게도 한 잔씩 돌렸다.
그러던 차에 서울 강북구청이 ‘향토민속 우수가양주 선발대회’를 최근 열었고,이씨는 ‘술맛이 좋다.’는 주위의 평판과 권유만 믿고 출품했다.심사위원 8명 가운데 5명이 가장 맛이 좋은 술로 꼽아 대상을 차지했다.
이씨가 출품했던 술은 자신도 정확히 잘 몰랐던 ‘진달래술’이었다.그동안 맥이 끊어진 것으로 알려진 진달래술이 어릴 때 할머니를 거들면서 곁눈질로 배운 이씨를 통해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었던 것이다.“진달래술 빚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니고요,어릴 때 할머니와 친정 어머니가 하던 것을 흉내냈을 따름이에요.”
이 술의 진가를 알아챈 이는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박 소장은 이 술을 맛보고 부녀필지,규합총서,시의전서 등의 옛 문헌에 전해 오는 ‘뼈대있는’ 진달래술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이씨 집을 방문,제조와 숙성과정을 직접 관찰했다.그 결과 충남 당진군 면천면에서 전해져 오던 두견주와는 제조과정이 전혀 달랐다.박 소장은 “이씨의 술은 묽게 끓인 보리차 빛깔로 아주 밝으며 향이 좋다.”면서도 “솔잎을 넣은 탓인지 약간 떫은맛이 있다.”고 말했다.청주보다 조금 더 독하다.진달래술은 단맛이 강하고 진달래의 고운 빛깔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독특한향취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특징.박 소장은 이씨의 술로 일부러 크게 취해보았다.물론 속이 메슥거리는지 다음날 깰 때 머리가 아픈지 여부를 알기 위한 테스트의 연장이었다.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다른 이들도 만찬가지였다.막걸리를 마셨을 때의 고약한 트림도 없었다.
진달래술은 담그기가 상당히 어렵다.진달래의 꽃술을 모두 떼어 낸 다음 그늘에 말려 두어야 한다.올 봄에도 부산에 사는 시어머니가 진달래꽃을 한껏 따 보내주었다.생쌀을 끓는 물에 넣어 설익힌 다음 손으로 문질러 가루로 만들어 밑술을 만들어야 둔다.“손으로 밑술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어 몸살이 날 지경”이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또 찹쌀과 멥쌀로 따로 고두밥을 쪄 진달래,밑술,고두밥,누룩의 순으로 켜켜이 담가야 한다.생쌀을 쓰고 진달래를 누룩과 섞지 않아야 한다.요즘 같은 날씨엔 술독에 담요를 덮어둔 채 20일가량 지나면 술이 익는다. 그러다가 술독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코를 갖다 대 냄새를 맡아보고 구수한 냄새가 나면 잘 숙성된 것으로 판단,청주를 뜨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용소를 박는다.찹쌀 1말,멥쌀 1말에 생쌀 3되 비율로 만들면 청주는 10ℓ가량 나온다.이씨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빚는 진달래술임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웃었다.
이기철기자 chuli@
2003-05-23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