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방생’ 물거품 조계종 ‘시끌시끌’
수정 2003-05-15 00:00
입력 2003-05-15 00:00
불교에서 죽게 된 물고기나 새 등을 물이나 산에 놓아주는 방생(放生)에 전해지는 이야기다.방생은 비록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비의 실천행위로,불가에선 불살생(不殺生)의 소극적 선행보다 높게 평가하는 적극적 선행으로 여긴다.
●승적박탈자 사면·복권 종회서 부결
올해도 예외없이 전국에서 방생 법회와 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신도들의 방생 행렬을 보는 조계종단의 마음이 편치 않다.얼마 전 해방 이후 처음 단행하려던 종단분규 관련 멸빈자(승적박탈자)들에 대한 대사면이 무산돼 그야말로 ‘인간방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멸빈자 사면·복권은 역대 총무원장들이 으뜸 공약으로 내세울정도로 조계종단의 해묵은 숙원사업.멸빈자들은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 이후 잇따른 종단 분규 때 중징계를 받은 승려들로,이들의 ‘방생’은 종단 화합을 위한 가장 큰 현안으로 인식돼 왔다.법장 총무원장도 취임 즉시 멸빈자 사면을 무엇보다 앞서 추진했고 초파일을 앞두고 중앙종회에 멸빈자 사면·복권을 상정했으나 결국 종회에서 부결됐다.
종회 결정 이후 법전 종정을 예방한 법장 총무원장은 “종정스님과 원로스님들의 사면 유시(諭示)를 받들어 종회에 올렸는데,멸빈자 사면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이에 법전 스님은 “요즘은 기술이 좋아 흉터 지우는 의술도 발달했다.”며 “종단의 상처가 잘 아물어가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멸빈자 사면·복권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 종단 내부의 지배적인 견해다.종정 스님의 교시,원로회의의 유시,총무원장 공약에 이어 총무원 집행부와 교구본사 주지회의까지 사면 촉구를 결의해 이번 초파일 사면·복권은 거의 기정사실화돼 있었던 만큼 그 후유증이크다.
조계종단은 멸빈자 사면·복권을 사회적으로 공표했고 대상자들은 과거의 행적을 반성한다는 요지의 참회문까지 발표했었다.법장 총무원장과 조계종 집행부는 다음 종회에 다시 상정해 멸빈자 사면·복권의 결실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비난 빗발… 집행부등 해결방안 고심
이에 따라 조계종단 안팎에서는 “종단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할 종회가 오히려 종단 화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반발이 적지 않다.조계종의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종회가 멸빈자들의 사면·복권후 자신들의 입지 약화를 우려해 범 종단의 합의사항까지 무시한 채 파벌주의에 치우쳤다는 것이다.현재 불교 인터넷 신문엔 “일반인에게까지 공표한 사안이 물거품이 돼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했다.”“이제 더이상 사면·복권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항의성 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보광(동국대 불교대학원장)스님은 “분규가 연중행사처럼 이어진 조계종단의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종권을 장악한 쪽에서 종단을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납득하기 어려운 징계를 단행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며 “그러나 이제는 사면을 단행하여 종단의 화합을 도모해야 하며 무엇보다 종단의 분규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2003-05-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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