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언론인 목숨과 바꾼 신념 / 옥중문학 ‘교수대로부터의 비망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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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4-23 00:00
입력 2003-04-23 00:00
“내가 글을 끝맺기 전에 교수대 밧줄이 내 목을 조른다면,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의 ‘해피엔딩’을 써주리라 믿는다.”

체코의 진보적 문학비평가이자 언론인 율리우스 푸치크의 간절한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그의 원고는 체코인 간수의 손으로 아내에게 건네진 뒤 옥중 수기 형태의 ‘교수대로부터의 비망록’(모티브출판사 펴냄)으로 햇빛을 보았다.

‘비망록’은 푸치크가 게슈타포에 체포되는 순간부터 1943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옥중 문학’이 주는 비장감으로 시종 눈길을 붙잡아둔다.무엇보다 빛나는 미덕은 한 인간이 목숨을 담보로 지켜려 했던 신념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극한 상황에서도 타협을 거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특히 고문에 못이겨 자백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숨이 붙어 있는 자신에게 “어머니,아버지,왜 저를 이렇게 강하게 키우셨어요?”(25쪽)라고 다그치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감방에앉아 그저 간단히 몇자 적어본” 양심수들에 대한 소개도 눈길을 끈다.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나치 투쟁에 나섰던 동지들을 향한 마음 씀씀이는 투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은이가 지닌 넉넉함을 보여준다.전차 차장 요세프,가정부 마리 등 아름다운 이들의 사연이 그의 ‘우정’에 힘입어 역사의 전면으로 복원된다.

그가 마지막 남긴 책의 마지막 대목은 인간을 울리면서 황폐해져가는 세상에 오래오래 메아리친다.“현실 속에서는 관중이란 없다.여러분 모두가 삶에 참여하고 있다.”

이종수기자
2003-04-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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