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우리 시대의 과장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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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3-22 00:00
입력 2003-03-22 00:00
중학교 국어 시간 때 비유법의 한 방법으로 은유와 직유외에도 과장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그러나 현재 소설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과장법이 비유법으로 그리 썩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강하게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호소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삼스레 이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야말로 자신의 목적을 교묘하게 감춘 과장법이 난무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오늘은 그 과장법에 기대어 우리시대에 난무하는 과장어법의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80년대 ‘말’지라는 잡지를 통해서 그때 정권을 잡고 있던 군사정부가 ‘보도지침’이라는 것을 무기삼아 언론을 통제한다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전에도 대충 이러지 않았을까 짐작은 했지만 그 충격은 가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아하,바로 이래서 이 신문이나 저 신문이나 똑같은 신문사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제목을 달고 기사 안에 쓴 표현들도 거기에서 거기였구나,알게 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미국을 순방할 때인가,그의 비행기 안 집무실에 다산의 목민심서가 있었다는 것도 어쩌면 신문마다,그리고 모든 신문의 취재기자의 눈에마다 똑같이 보였던 것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던 것이다.그러니 정권으로서 불리한 기사야 오죽 통제를 하고 한 목소리를 내게 하고 큰 것을 작게 만들고,또 이쪽에서 알려야 할 것은 기사의 가치로나 비중으로 볼 때 작은 것도 크게 써내라고 했을 것인가.

그런데 다시 요즘 그 시대의 ‘보도지침’이라는 말을 일부 신문도 여과없이 쓰고,야당도 그 말을 여과없이 대변인 성명서를 통해 뱉어낸다.‘출입기자제,기자실 폐지한다’ ‘문화부도 기자실 폐지’ ‘문화부 취재제한 파문’ ‘야,신보도지침 비판’ ‘기자실 폐쇄 언론 자유 침해’.이 말대로라면 정말 큰일이다.얼마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에 대한 일부 신문의 기사 제목들이다.

여기에 야당인 한나라당까지 강경한 목소리로 함께 나서고,그것이 연일 언론에 문제화되자 대통령까지 “정부 지침이 개입이라는 소지가 있다면 이는 적당치 않으며 그런 방향으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과장법에 기대어 말하자면 ‘그렇게 거품을 무는’ 신문들 어디에도 정작 ‘기자실 대신 개방형 브리핑룸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제대로 제목을 뽑은 기사는 없다.이런 게 ‘신보도 지침’이라고 거품을 물어도 정작 본질적인 것은 축소해 말하지 않거나 뒤로 돌리는 것,이게 바로 언론이 파악하고 대응하는 ‘신보도 방식’인지.

정치권의 과장법이야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다.그래서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이 정권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악의 독재정권’이라는 말을 야당 국회의원이 전국민을 상대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토론에서까지 여과없이 뱉어내곤 했다.거기에 대해 시청자들은 저것이야말로 정치적 수사의 과장법이라고 받아들였고,그 토론에 함께 참여한 한 정치학자만 정색을 하고 거기에 반론을 제기했다.정말 그러냐고,그것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한국 정치사를 가르치는 우리들의 몫은 무엇이냐고.

그래,정치권의 과장법이야 지금도 충분히 들어줄 만하다.문학에서도 이젠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의 과장법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우리나라에서 가장 미개화된 동네가 바로 그 동네니까.그러면서도 언제나 실상을 ‘잘 모르거나 무지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끝마다 거품을 무는 동네가 바로 그 동네니까.



그러나 언론의 과장법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신문사 중에서도 특정 신문사의 기득권을 위한 과장법의 말이라면 더욱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70년대와 80년대 위정자들이 흔하게 쓰던 말처럼 그것이 의도적인 ‘국론분열’을 위한 딴죽걸기의 과장법처럼 보인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 순 원
2003-03-2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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