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춘곤증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2003-03-06 00:00
입력 2003-03-06 00:00
꽃샘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봄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진 것 같다.문득 봄은 노인의 눈꺼풀을 타고 온다고 했던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계절의 변화마저도 연륜의 감시망을 비켜가지 못하고 노인의 눈두덩이에서 먼저 감지된다는 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춘곤증(春困症)을 무슨 대단한 계절병인 양 떠벌리는 사람들을 보면 까닭 모를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누가 믿든 말든 춘곤증이야말로 동면(冬眠)의 반작용이라고 했던 이와무라 겐이치 일본 도카이도 대학 교수의 주장이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만물의 영장을 파충류나 곰 정도로 비하한 점이 다소 마뜩찮지만 겨우내 움츠렸던 신체가 기지개를 켜는 ‘신호음’으로 파악한 감각은 백 마디의 말을 뛰어넘는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발상도 전신마비 장애 상태에서 시를 쓰다 떠난 김형태 시인이 춘곤증에 젖더라도 봄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했던 욕망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시인의 갇힌 욕망이 손 끝에 와닿는 듯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2003-03-06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