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신화’ 삼보컴퓨터 휘청,작년 4980억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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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3-05 00:00
입력 2003-03-05 00:00
1980년 7월,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서울 청계천 4가 세운상가의 한 허름한 사무실에 7명의 ‘젊은이’가 의기투합해 자본금 1000만원 규모의 작은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3년 3월,이 회사는 청계천을 벗어나 전세계 곳곳에 현지 법인을 갖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자본금 규모만 1만 1626배 뛰었다.이들의 성장스토리는 종종 ‘청계천 신화’로 불린다.

국내 개인용컴퓨터(PC) 기업의 효시인 삼보컴퓨터가 위기다.때맞춰 ‘개발시대’의 상징인 청계천 일대의 고가도로를 허물고,실개천이 흐르던 옛모습으로 복원하는 첫 삽이 7월에 떠질 판이다.‘청계천 신화’는 고가도로와 함께 무너질 것인가.

●IT 불황에 ‘흔들’

위기는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삼보컴퓨터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 3670억원.2001년의 2조 6399억원에 비해 11% 하락했다.

순익 규모는 더욱 어렵다.2001년 매출 규모에 비해 미미한 63억 7000만원의 순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이마저 적자로 돌아서 4980억원의 엄청난 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측은 두루넷 등자회사 부실을 지분법 평가손실로 반영하고,장기 재고 등을 털어낸 것일 뿐 경영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실 삼보컴퓨터의 위기는 이미 예견돼 왔다.세계적인 IT(정보기술) 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계 PC시장은 2000년 1억 3300여만대를 고비로 2001년 1억 2400만대,지난해 1억 2800여만대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국내 시장도 2000년 330여만대에서 2001년 265만대,지난해 260여만대로 지속적인 하락세다.중요한 것은 올해도 시장전망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PC생산 및 수출(해외매출이 전체의 80%)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삼보컴퓨터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성장기에 설립하거나 투자한 계열사들의 부실도 삼보컴퓨터의 ‘발목’을 잡고 있다.특히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전문업체인 두루넷은 업계의 치열한 경쟁속에 큰 손실을 입어 모회사인 삼보컴퓨터의 위기를 재촉했다.삼보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두루넷 매각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하나로통신에 이어 데이콤과의 매각협상 결렬로 어려움에 빠진 상태다.

●2000년이 ‘분수령’

삼보컴퓨터의 ‘청계천 신화’는 지난 23년간의 성장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80년 7월,당시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던 이용태 박사(현 삼보컴퓨터 회장)를 비롯한 7명의 창립 멤버가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81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PC를 생산했으며 그해 겨울 캐나다에 첫 수출했다.83년에는 전문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PC연구소를 세웠다.

격적인 성장은 86년 시작됐다.미국과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에 대규모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 수출의 ‘물꼬’를 튼 것이다.89년에는 PC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고,기업을공개하기도 했다.90년대말의 IT붐은 삼보컴퓨터를 대기업 반열에 올려 놓는 계기가 됐다.98년 미국 현지 판매법인 ‘이머신즈’와 일본 현지 판매법인 ‘소텍’을 세워 이듬해 미·일 시장점유율 1∼2위를 기록했다.계열사인 두루넷과 이머신즈 등의 나스닥 상장도 이때쯤이다.500만달러(60억원)라는 ‘거액’을 들여 코리아닷컴(www.korea.com) 사이트를 사들이는 등 계열사도 10여개 이상 확대했다.

그러나 ‘불행’은 소리없이 찾아왔다.2000년 말 시작된 IT 불황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계열사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결국 두루넷은 지난해 말 나스닥에서 퇴출됐다.

●다시 ‘초심’으로

삼보컴퓨터가 내세운 재기 카드는 ‘슬림화’.매각이 불발로 끝난 두루넷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한편 국내 안산공장 PC제조라인을 분사하는 등의 사업구조조정을 꾀하고 있다.안산공장의 메인보드 생산라인은 이미 지난 1월 분사했다.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관계자는 “제조라인 분사와 글로벌 생산라인 조정 등으로 연간 250억원 이상의 제조비용을 절감하게 된다.”면서 “이같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고도화 전략을 추진,지난해 보다 15% 늘어난 2조 7270억원의 매출과 경상이익 327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C업계 관계자는 “삼보컴퓨터가 국내 벤처기업의 효시답게 치열한근성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면서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2003-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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