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 信
수정 2003-02-22 00:00
입력 2003-02-22 00:00
김용락 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
머리 뒤끝이 희끗한 중년의 아버지가
희생자들의 유품 수거함 속에서
어딘지 낯익은 듯한 휴대폰 하나를 주워 들었다
불에 타다 남은 부분에서
애써 어린 딸의 얼굴을
찾아내려는 듯
한동안 말없이 물건을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딸 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눌러 본다
불에 녹아 사라진 아라비아 숫자의 허공 속으로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자꾸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딸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니,문 열어 주세요,뜨·거·워… 소리가
환각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이 도시 어디엔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면 이미 하늘나라에서
지상의 가여운 아버지를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을
어여쁜 딸에게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자꾸
보내고 있다
문득,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뚝! 먼지 쌓인 구두 코에 떨어졌다
2003-02-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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