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대참사 / 1080호 생존자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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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2-21 00:00
입력 2003-02-21 00:00
“시커먼 연기를 헤치며 반은 걷고 반은 기어나오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최악의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정영섭(43)씨는 시간이 갈수록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TV에서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씨는 당시 1080호 전동차의 첫번째 차량에 타고 있었다.지하철은 중앙로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린다 싶더니 금방 닫혔다.전기도 곧 끊겼다.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왔고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습니다.”

정씨와 같은 전동차에서 코를 막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박윤호(24)씨는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이 출구 쪽으로 내달렸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박씨의 가방끈을 붙잡았다.혼자 빠져나가기도 힘들었지만 박씨는 말없이 따라오는 그 사람을 위해 발걸음을 조금 늦췄다. “마지막 계단만 올라가면 지상이었어요.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넘어지더군요.뒤돌아가 찾았지만 안보였어요.숨이 턱턱 막혀와 저만 우선 나왔는데….” 박씨는 “그분도 무사하시겠지요.”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화재 직전 서로의 시선을 무심히 넘기는 ‘일상의 승객’이었던 이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아비규환의 순간을 겪은 뒤 나란히 동산병원에 입원했다. “시커먼 가래가 나올 때마다 그 끔찍했던 연기와 살을 녹이던 열기가 떠올라요.평생 그 공포감을 지우지는 못하겠죠.”

특별취재반
2003-0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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