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검찰총장 逆 임기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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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1-25 00:00
입력 2003-01-25 00:00
그러나 임기제 첫 총장인 김기춘씨는 90년에 총장직을 마친 뒤 곧바로 법무부 장관이 됐다.임기제가 직접적으로 훼절된 것은 93년 3월 김두희 총장 때였다.93년 2월에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김 총장을 전격적으로 법무부장관에 발탁했다.김 총장에 대해서는 요즘도 안타까워하는 검사들이 많다.당시 YS가 정치적 판단으로 경남 출신의 김 총장을 발탁했을지언정,김 총장은 임기제를 들어 고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다 보니 그 후부터는 임기제가 무색해졌다.88년 이후 10명의 총장 가운데 6명이 임기 중 하차했다.
1997년 1월에는 여야 합의로 ‘검찰총장은 퇴직일로부터 2년 이내에는 공직에 임명될 수 없다.’는 검찰청법 12조 4항을 입법화했다.88년 임기제 입법 당시,검찰국 검사가 ‘임기제 안에 내포돼 있다.’고 설명한 ‘공직 취임금지’를 명문화한 것이다.총장 자리를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하고 곁눈을 주지 말고 일하라는 입법취지였다.그러나 공직 취임금지는 곧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당시 김기수 검찰총장과 고검장급 간부들은 ‘공무담임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으며,헌법재판소는 그해 7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하지만 고위 간부들이 헌법소원을 낸 데 대해서는 소장 검사들의 비판이 적지 않았다.공직 취임금지는 검찰권 중립화를 위한 고육책임에도 이를 외면했다는 주장이었다.법조계 인사들은 요즘도 당시의 행태를 못마땅해 한다.‘독립 검찰’을 위해 총장 임기제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그를 보완할 수 있는 공직 취임금지를 거부한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최근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김각영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 여부를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검사들은 자신의 수장(首長)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동안 임기제가 지켜지지 못했던 것은 정치권뿐 아니라 검찰총장 스스로의 책임도 적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만약 김기춘 김두희 김도언 김태정 전 검찰총장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임기 중 또는 임기를 마친 뒤 임명권자가 제안한 법무부장관 등의 공직을 물리쳤다면 이렇게까지 정치권에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기제는 검찰총장이 임기 동안 정의를 세우기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거악(巨惡)척결과 인권보호에 앞장서는 훌륭한 총장을 정치권이 멋대로 갈아치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그러나 한편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예컨대 이명재 전 총장은 서울지검에서 피의자 폭행치사사건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용퇴했다.신승남 전 총장 역시 동생의 비리로 퇴진했다.책임질 일이 있을 때에 임기에 연연하면 정치권에 대한 눈치보기와 리더십의 상실로 검찰권을 지휘하기가 어렵다.김각영 총장은 임기제 때문에 임기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총장 자리를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하고 검찰권을 소신있게 행사하는 총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진선jshwang@
2003-01-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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