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야마모토 쓰네토모 지음,하가쿠레-일본 고전서 배우는 자기수양
수정 2002-10-04 00:00
입력 2002-10-04 00:00
일본의 고전 ‘하가쿠레(葉隱)’에는 이처럼 자기수양과 인간경영을 위한 ‘잠언’이 그득하다.이 책은 1716년 사가번(지금의 규슈 일대)의 가신 야마모토 쓰네토모가 은둔생활을 하면서 구술한 것을 같은 번 출신 낭인인 다시로 쓰라모토가 받아 적어 정리한 것.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본이 나왔다.옮긴이는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을 지냈다.총 3권,11장의 방대한 내용 중 핵심만을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겼다.
하가쿠레는 풀이나 나뭇잎 사이에 숨는다는 뜻.나뭇잎 그늘 초가집에서 이야기하고 듣고 쓴 구술서라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이 책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무사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인간경영의 지혜,자기수양,명예의 소중함,지도자의 마음가짐,처신의 어려움,용기와 결단력 등 현대인들이 새겨야 할 덕목들을 오롯이 담았다.
책의 메시지는 서두에 나오는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다.”라는 말에 응축돼 있다.싸움에 임하는 사람으로서의 행동미학,즉 무사는 어떻게 ‘멋’을 갖추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이것은 곧바로 세상사에 임하는 현대인의 자세에도 적용된다.
일본 중세(12∼16세기)의 무사는 싸우는 일이 주된 직분인 만큼 무사도의 내용은 죽음으로 주군에게 봉사한다는 충성과 상무정신이 핵심을 이룬다.무사는 주군을 위해 어떻게 죽을까.그중 하나가 할복이다.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介錯)를 자랑스레 여기는 무사도는 소름 끼친다.
그러나 ‘하가쿠레’는 죽음의 미학만을 말하지 않는다.본문 중에 “적과 맞닥뜨렸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지만 조금만 마음을 진정시키면 어슴푸레한 달빛 정도의 밝기를 되찾는다.”라는 대목이 나오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위급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지혜,즉 사즉생(死卽生)의 정신을 강조한다.
책을 쓴 쓰네토모는 야망을 지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곧고 섬세한 성격에 극기심이 강했으며,20세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병약한 체력을 섭생과 단련으로 극복한 놀라운 정신력의 소유자다.그 도저한 정신의 결정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의학에서도 남녀의 맥(脈)에 차이가 있는데,최근 남자와 여자의 맥이 같아져 버렸다.”고 개탄한다.‘남자다운’ 기개가 희미해져가는 요즘의 유약한 남성 세태에 대한 일침으로도 들린다.비록 300년 전 봉건시대의 ‘케케묵은’ 이야기이지만,그 시대의 인간 도리 중에는 오늘날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2002-10-0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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