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장기불황’ 일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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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9-25 00:00
입력 2002-09-25 00:00
최근 일본경제불안설이 고개를 들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10여년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원인과 교훈에 대한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았다.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는 것이다. 일본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툭하면 위기설에 휩싸이고 있다.우리의 부동산 투기과열 현상에 잘못 대응하면 우리도 일본식 장기불황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대한매일은 일본경제전문가인 고용수(高瑢秀) 한국은행 아주팀장과 KDI의 일본 관련 보고서 작업에 참여한 우천식(禹天植) 장기비전팀장의 대담을 갖고 일본의 장기불황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 등을 짚어봤다.

◆고용수 팀장-일본 경제가 위기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한국은행 도쿄사무소에서 5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일본사람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것입니다.자그마한 어려움도 마치 위기처럼 말하곤 합니다.일부에서는 일본이 위기불감증에 걸렸다는 지적도 하지만,일본에는 위기의 분위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천식 팀장-최근 장기침체라고 하는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일본경제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죠.10년 장기불황에 비하면 최근에는 새로운 균형기에 접어들었습니다.KDI는 ‘일본경제의 10년 불황에서 배워야할 교훈’보고서에서 세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첫째는 성공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는다는 것이고,둘째는 10년동안의 점진적인 체질개선 노력으로 최소한의 안정을 되찾는다는 것입니다.마지막 시나리오는 구조적인 침체로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것입니다.저는 일본이 어느 정도의 조정기를 거쳐 회복의 발판을 마련해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고 팀장-일본의 구조조정은 10년동안 진행돼 왔지만,한국식 관점으로는 성과가 없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습니다.하지만 일본의 구조조정은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미식과 다릅니다.일본은 이해관계자 모두를 중시합니다.따라서 쉽게 구조조정을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앞으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일본이 공적자금을 투입할줄 몰라서안하는 게 아닙니다.우리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일본사람들은 은행 책임을 정부로 떠넘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 팀장-일본이 불황을 겪게 된 원인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일본의 침체는 우리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비정상적인 거품이 생겼고 과감히 금리를 올렸어야 했는데 방치하지 않았습니까?그런 경험은 최근 우리의 거시정책 운용기조에도 함축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고 팀장-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은 버블(거품) 붕괴와 정책 타이밍의 실기에서 촉발됐습니다.85년 플라자합의 이후 87년까지 엔화강세에 대응하기 위해 내수진작 정책을 폈고 13개월동안 재할인율을 무려 2.5% 포인트나 내렸습니다.이것이 부동산 버블을 가속화시켰어요.경기과열 조짐을 느낀 일본은 89년까지 5차례에 걸쳐 금리를 3.5%포인트 인상해 긴축정책을 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뒤였습니다.버블이 고조됐을 때 긴축정책을 폄으로써 붕괴를 가속화시킨 셈입니다.우리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중동정세불안 등 대외경제불안 요소가 있어 금리인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일본의 실패 교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 팀장-일본의 금리정책은 미온적,사후적이었고 미국은 과감한 선제적인 정책을 취해 안정적인 기조를 마련했습니다.일본의 경험은 금리인상의 폭과 점진적인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금리인상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일본은 자산 디플레와 주가하락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우리는 주가는 보합·안정화돼 있고 부동산가격이 오르는 양상입니다.일본의 경우 기업들이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어 버블이 꺼지는 데 민감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 거시정책적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 팀장-금리를 올려야 한다기보다는,금리 인상의 폭을 생각하면서 점진적인 인상을 생각해야 합니다.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실물시장이 주식시장을 주도했지만 금융시장이발달한 요즘에는 금융의 영향이 더 큽니다.일본의 상황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정책의 타이밍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 팀장-일본 경쟁력의 한계에 대해 논의는 많지만 아직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경쟁력의 한계는 80년대부터 나타났습니다.일본은 경제주체간 긴밀한 거래를 하면서 자체 조달하는 구조입니다.경쟁·비경쟁이 결합된 이중구조이기도 하지요.하지만 이런 자급자족·폐쇄형 경제는 세계화에 직면하면서 한계를 보여줬습니다.재정과 금융정책을 통한 거시적인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시스템 전환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고 팀장-거기에는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경쟁을 중시하는 미국식 경제는 세계화의 흐름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회계부정 등으로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이 세계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모델을 바꿔서 경쟁력을 확보할 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식 스타일에 접근해 가고 있지만,일본의 장점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일본의 장점은 경영자·노동자의 장기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데 있습니다.경쟁과 협조 가운데 협조에 무게를 뒀던 일본식 경영방법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우리는 미국식 장점과 일본식 장점을 지혜롭게 조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 팀장-맞습니다.미국의 최대장점은 개방성과 유동성에 있습니다.일본의 폭넓은 관계지향성은 그동안 폐쇄적인 범위내에서 이뤄져 왔지만 앞으로는 개방적인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의 모든 것을 폄하하기보다는 단점을 생각하면서 학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지난 5년동안 우리가 받아들이려고 했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다시 평가하는 게 우리의 새로운 과제입니다.

◆고 팀장-장기불황 속에서도 일본 대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해 연구개발에 투자합니다.이런 노력들은 설비투자 지표에 반영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생산능력 자체를 축소해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일본 기업들의 이런 노력을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만 일본은 정부의공공적인 측면을 중시합니다.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40%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공재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 팀장-대기업 중심인 우리의 경제구조는 일본과 비슷하지만 일본에 비견할 실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요.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들이 특히 취약합니다.성장동력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이런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정부가 새로운 역할을 하도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팀장-일부에서 일본이 디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기를 부양시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만,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일본은 연금·고용 등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가 늘지 않고 저축률이 상승했습니다.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으면 경제가 회복되기 어렵습니다.일본이 엔화약세 정책을 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과잉고용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본은 해고보다는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감축 등의 방법을 택했고 우리는 해고를 택했습니다.

◆우 팀장-외환위기를 겪은뒤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 시스템이 모범답안처럼 돼버렸습니다.미국식 인력구조의 문제점은 인적 자원 투자가 약하다는 것입니다.실험적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부작용도 많습니다.일본 시스템의 장점은 사람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지요.일본식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식 인센티브 성과주의에 의존하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고 팀장-일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사람들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고이즈미 내각의 목표는 ‘국민 모두가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경제사회 구축’을 내걸 정도로 사람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우 팀장-우리는 5년동안 심층적인 구조조정을 했고 최저생계비 등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하지만 아직까지 국민들의 정서는 ‘능력이 없어 구조조정을 당한다.’는 것이지요.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한다면 사회적인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재교육과 재배치 등에 대해 국가는 고민해야 합니다.범국민적인 동의가 없다면 시스템의 위기가 올 수있습니다.구조조정 과정의 피해를 국가가 최소한 보상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박정현 김유영기자 jhpark@

◇고용수 한국은행 조사국 해외조사실 아주팀장

▲47세 ▲연세대 경제학과 ▲81년 한은 입행,조사국·기획국 등 근무 ▲도쿄사무소(94년 10월∼99년 6월) 근무

◇우천식 KDI 장기비전팀장

▲42세 ▲서울대 경제학과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석·박사 ▲클렘슨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 ‘위기극복이후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지식기반경제발전 종합전략’ 등 다수
2002-09-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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