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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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4-08 00:00
입력 2002-04-08 00:00
얼마 전 TV를 통해,안락사를 허락받은 뒤 “죽을 권리를인정해준 병원측과 신에게 감사한다.”며 감격의 눈물을흘리는 외국인 말기 암환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생명을 지탱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그토록 고마워할까.살 수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이젠 죽을 수 있어 감사한다는 사실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외국인 환자의 감격은 내 목숨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문명인의 벽이 허물어진 데서 나온 것이다.말기 암이나 불치병을 앓는 환자 자신과 가족의 입장에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고통의 나날은 견뎌내기가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다.여기서 ‘행복한 죽음’일 수 있는 안락사의 필요성이 개입되지만 세계 각국의 제도는 이 안락사를 용인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TV속 말기암환자의 표현에는 신에의 감사가 담겨 있다.‘오직 신만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과 고집은 자살이 죄악이듯 그자살을 돕는 의사의 행위도 죄악으로 간주한다.하지만 말기암환자나 뇌사자를 안락사시켜 살인죄로 법정에 섰던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으며 망가지는 인간의 존엄성을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지난 1일부터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해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처럼 안락사는 각국의 현실적 고민이다.이같은 실정법의 딜레마만큼이나 종교계의갈등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종교계는 ‘인간의 존엄성 손상’‘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 사용금지라는 성경 말씀의 위배',혹은 ‘살인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배반행위’등으로 안락사를 반대한다.실제로 네덜란드의 안락사 허용에 대해 교황청은 ‘네덜란드 국민에게 슬픈 기록이며 인간의 양심에 근거한 자연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바꾸지않고 있다.

생명의 경외사상을 변함없이 실천했던 슈바이처 박사는더운 여름 밤 결코 창문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집안으로들어온 벌레들이 램프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뜻에서였다.“환자가 요청하더라도 결코 독약을 주지 않겠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구절은 생명을 천부의 권리로 규정한 것이다.하지만 고통 앞에서 죽음의 선택이 오히려 천부의 권리라고 안락사론자들은 말한다.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2000년 성균관대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 선생의 고유제에 참가해 개신교와 천주교의 질시를 받았다.

천주교인,그것도 천주교계의 대표격 인사가 유교 제사에동참했다는 사실에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김추기경의 ‘열린 신앙’에 박수를 보냈었다.

종교가 중시하는 인간의 존엄성도 사람의 입장에서 쳐다볼 때 진정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안락사도 그런 관점에서논의돼야 할 것이다.

김성호 기자 kimus@
2002-04-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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