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숙 칼럼] 실직자들이 출마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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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3-01 00:00
입력 2002-03-01 00:00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역시 조기퇴직한 언론계의 한선배는 이렇게 말했다.“지금 자신의 능력을 썩히고 있는 고급 인적자원이 어느 때보다 많다.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그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지방자치에 새바람이 불 것이다.지방의원의 경우 무보수 명예직이라지만각종 수당 등으로 사실상 보수가 지급되고 있지 않은가.” 지방자치에 대한 이런 접근은 너무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
정치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정치적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도 정치권 진입장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선거비용 조달도 만만치 않고,득표활동을 위한 인원동원은 정치를 모르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엄두를 내기도 힘든 일이다.
법정선거비용이 기초의회의원 1940여만원,광역의회의원 2950여만원,시·도지사 8580여만원(1998년 지방선거 평균)이라지만 실제로는 그 몇 배 또는 몇십 배가 드는 것이 현실이다.
또 정당공천이 배제된 기초의회 의원후보도 사실상 ‘내천’ 형식의 정당공천을 받고 있고,단체장에 대한 이른바 상향식 공천도 요식 행위에 그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선거 비용이드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벌써부터 지적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새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특히 지방의회선거에 ㄱ씨 같은 사람들이많이 도전하기를 바란다.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인사들이 지방의회로유입된다면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관심이 높아지고 바람직한 지방자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이 지방정치에서 힘을 길러 중앙정치무대로 옮겨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남은 생애를 봉사하는 자세로 지역발전에 헌신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성 주의회 의원의 70%,남성의원의 60%가 50대 이후에 지방자치에 진출하고 있다.
1991년 기초·광역의회가 구성돼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1995년 단체장 선출 등 지방동시선거를 통해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됐으나 아직도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낮다.주민의 무관심과 참여 부족은 지방의회 운영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지방의원의 주민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기초의회의원의 약 절반이 농업·상업·건설업 등 자영업자 출신이다. 지방의회가 의원 구성 측면에서 사회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원의 자질과 전문성 부족도 지적되는 문제다.
지방자치에 정치꾼이나 특정 직업군만이 아니라 일반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환경운동연합이 100여명의 ‘녹색후보’를내고 기초의회 선거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가 하면 여러 시민단체들이 후보 검증작업 등 새로운 형태의 지방선거 참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여성계가 여성후보 발굴을위해 정치교실을 열듯,시민단체들도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지방선거 후보교육을 마련해 볼만 하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라고 한다.지방자치 발전을위해서는 지방자치제도의 개선과 자치단체의 권한 확대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주민참여 확대와 의식의 변화가 시급한 과제다. 올해 6월 지방선거가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냉소적 태도를 변화시켜 풀뿌리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내리고,가지를 뻗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영숙/ 공공정책연구소장 ysi@
2002-03-0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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