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마친 무상사 국제선원/ 한국참선 울력병행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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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2-28 00:00
입력 2002-02-28 00:00
러시아 출신의 한 비구 스님은 “지난 세월의 업을 녹이려참가했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게을러서 스님들의 깨우침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감이 있다”면서 다음 안거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미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안거를 통해 독특한 수행방식을 알 수 있게됐다.”면서 “이 안거는 평화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상사는 화계사 조실 숭산스님의 원력으로 1년전 완공된국내 유일의 외국인 전용 참선도량.단청도 들이지 않은 2층짜리 선방 건물과,54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3층짜리 요사채가 전부로 별도의 대웅전과 조사실 건물 공사를 곧 착수한다.
사실상 첫 동안거인 무상사의 이번 결제엔 비구 비구니와재가 불자 등 15개국의 외국인 87명이 참가했으며 35명이 3개월 결제를 꼬박 채웠다.오전3시에 기상해 대중회의를 갖고 4시 아침예불후 2시간동안 참선에 들어가는 등 하루 일정은 끊임없는 참선의 연속이었다.
6시 아침공양후 1시간동안 울력(힘을 합해 일함),9시부터또다시 2시간동안 참선한뒤 점심공양,오후1시부터 3시간30분동안 참선,그리고 공양 후 6시 예불,7시부터 2시간 참선후묵언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의 안거 의식을 그대로 따라 외국인 납자들에겐 여간 힘든 수행이 아니다.
특히 외국 선원의 수행과는 달리 울력과,각자에게 각각 주어지는 소임 등 일과 수행을 병행하면서 자신을 다져가는,힘들지만 독특한 수행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모았다.
법회에서 수행 대표들은 조실 대봉스님께 예를 갖춰 감사의 뜻을 모은 선물을 올렸다.해제법회를 마치고 이들은 각자자신의 소속 사찰과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별리의 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그럼에도 표정엔 감정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주지 오진 스님은 “한국은 지구상에서 선 불교의 맥이 온전히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며 이는 지난 1700년간 수행정신을 지키려는 승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한국의 훌륭한 전통이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열매를 맺게 하는 초발심의 터전으로 무상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산 글 김성호기자 kimus@
■대봉스님 “‘모른다’는 생각으로 참선해야”.
무상사 조실 대봉(大峰·세수 52)스님은 해제법회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수행정신과 숭산스님과의 인연,수행방향에 대해 밝혔다.대봉스님은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심리상담사로 일하던중 숭산스님의 법문에 감명을 받고 출가해 지난 91년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참선은 어떻게 진행됐나] 숭산스님이외국상황에 맞춰 만든 공안집 ‘세계일화’에서 선별한 공안을 따랐다.한국 선 수행엔 1700개 이상의 공안이 있다.이는 365일 내내 수행의 모든 과정에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참선지도때 대중들에게 강조한 부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은6년간을 ‘모르는 마음’으로 참선했다.그것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수행의 기본 목표는 우리의 근성을 깨달아 중생을 돕는 것이다.항상 나는 누구인가를 꾸준히 묻고 ‘오직 모른다’는생각으로 정진해야 함을 강조했다.
[숭산스님을 어떻게 생각하나] 11살때 가족과 함께 일본여행에서 불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불교 경전보다 스승을 찾고자 했는대 1977년 예일대학에서 한국의 선사가 법문을한다고 해서 찾아가 들은 스님의 법문이 인연의 시작이다.
서양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허무함을 갖고 살았다.큰 스님의 법문은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울림으로다가왔다.
[한국불교의 맥을 잇는 자신의 수행관은] 모든 동물이 배고플때 먹지만 이것은 동물의 마음이다.인간과 동물의 차이는왜 먹어야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편견과 집착을 중단하고 잘라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매일 매일 일상에서 하는 것이 수행이지만 우리가 그것을깨닫지 못할 뿐이다.그래서 별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김성호기자
2002-02-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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