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선생님! 수영장에서 고기잡아요”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2001-12-27 00:00
입력 2001-12-27 00:00
‘얘들아,나와라.달 따러 가자 망태 들고,장대 들고 뒷동산으로.’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는 시큰둥하다.노랫말이 나빠서는 아니다.정서가 불안해서는 더욱 아니다.그럼 뭘까? 현란하게 흔들어 대는 비디오형 인기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서? 컴퓨터 오락이 있고,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금방 히히덕거릴 수 있는 만화책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정규 시간이 끝나기 바쁘게 특기적성 학습해야지,그리고 나서 학원에 가야지,오락실에도 들려야지,밥 먹고는 컴퓨터 앞에서 카페나 홈페이지도 들러보고 이메일도 주고받아야지,그렇지 채팅도 해야지….그래야 축에 빠지지 않지,그래야 내일 아침에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 수 있지….

어른들만 바쁜 게 아니라,아이들도 정말 바쁘다.그런데언제 달을 봐? 지난 여름 방학 때도 아이들은 어디서 고기를 잡느냐고 했다.

‘쉬쉬쉬,솨솨솨,고기를 몰아서,어여쁜 이 병에 가득히담아서 선생님한테로 가지고 가야지,랄랄랄라,랄랄랄라….

’ 여름 방학 때면 이런 노래 부르며 냇가에서 붕어도 잡고,미꾸라지도 잡으며놀았다는 얘기는 이제 딴 나라 얘기다.

“고기 무서워서 못 잡아요.” “고기 잡을 시간 있으면 춤춰요,오락해요.” “우리 엄마가 옷 버린다고 못하게 해요.그런데 수영장에도 고기 있나요? 선생님! 수영장에서 고기 잡아요.”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요즘 아이들이다.하긴 날만 새면 오염된 환경 얘기이고,마구잡이 개발로 자연이 사라져 가니 어느 냇가에서 고기를 잡을까? 두둥실 달 떠오르는 이른 저녁,어느 동산에서 아이들이 어울려 놀며 달을 딸까?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별자리 관찰한다고 추운 베란다에서 귓불이 새빨개지도록 하늘을 쳐다본다는 5학년석이.

“이거 고드름이예요.우리 집 처마에 많이 있어요.” 신기한 보물처럼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고드름을 들고 온 2학년 다인이.

그래,얘들아! 이번 겨울 방학에는 달도 따고,별도 따고,고드름도 따거라.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 위에 두 팔 벌리고 드러누워 멋진 사진도 찍어라.아차차! 조심,조심! 먹지는 말아라.

김목/ 함평 월야초등 교사
2001-12-27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