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아,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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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2-22 00:00
입력 2001-12-22 00:00
아르헨티나는 영국 도박사들이 내년 월드컵축구대회 우승가능성 1위로 꼽고 있는 나라다.16강 진출이 비원인 우리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는데 그러나 꼭 그럴 것도 없다.지금 그곳에서는 먹을 것이 없는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 약탈을 일삼아 무법천지가 됐으니 말이다.아르헨티나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5대 경제대국이었다.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저녁 무렵이면 쇠고기 굽는 ‘향기’가 골목마다 그윽했다고 하니 당시의 아르헨티나인들이 60년 후 군중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식품점을 약탈할 지경이 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아르헨티나라 하면 탱고,축구와 함께 영화 에비타의 주제곡 ‘돈 크라이 포 미 아르젠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도 떠오른다.주인공 에바 페론으로 열연한 마돈나가부른 노래다.에비타는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 배우로 전전하다가 어느날 페론장군을 만나 나중에 영부인이 된 에바 페론의 애칭.그녀는 지금도 아르헨티나인들의 마음속에는 ‘성녀(聖女)’로 살아 있다.페론의 대중주의(포퓰리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무책임한 정치노선.국내 기업가들에게는 수입대체산업화(ISI)로 국내시장을 보호해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고임금과 사회보장을 제공했다.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밀과 쇠고기를 팔아 쌓아 놓았던 외환보유고로 메웠다.에비타는 대중주의가운데 ‘노동자의 친구’ 역할을 맡음으로써 1952년 33살의 나이로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한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의 영원한 벗’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중주의는 머지않아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결돼주기적인 위기를 불러들이게 됐다.10년전 아르헨티나 정부는 고정환율제를 도입하고 공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성공하는 듯했지만 90년대 중후반 다시 위기에 빠져 들었다.고정환율제로 무역적자가 늘어난데다 더 이상 팔 공기업이 없어지면서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예나제나 미리미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대신 흥청망청 쓰거나 쉽게쉽게 적자를 메우려 한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나라를 한 번 잃어버렸던 백성은 또 잃기 쉽다’는 말이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지나온 길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2001-12-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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