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교육 프로그램 7개월사이 5번이나 바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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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2-06 00:00
입력 2001-12-06 00:00
“선생님,여기 계시는구나.” 식판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대던 영선이가 다가온다.영선이는 특수반 아이다.슬슬 아이들 눈치를 보다가 옆자리 여선생님 곁에 앉으며 어설프게 웃는다.
학습 적응력이 낮지만 눈치는 있어 저를 이해해주는 담임곁으로 온 것이다.갸냘프고 왜소한 영선이는 폭식을 한다.
저 혼자 내버려두면 놀랄 만큼 많이 먹는다. 그런 영선이를 보면서 언뜻 요즘 학교에서 진행중인 ‘컴퓨터 업그레이드’ 생각이 교차한다.교육정보화 사업 덕에 지금 일선학교에는 종합정보관리망이 구축되었다.컴퓨터 성능 문제등 어려운 점도 있지만,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는 물론교무일지까지도 쓸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지난 5월에 그 프로그램을 2.7로 업그레이드하라는공문이 왔었다. 뒤이어 2.73,2.75,2.8이 오더니 급기야 11월 5일에는 2.81로 바꾸라는 공문이 왔다.7개월 사이에 무려 5번이나 바뀐 셈이다.
“아,성능을 향상시켜준다는데 무슨 잔소리야.주면 주는대로 먹지.”이렇게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하지만 차분히연구해서, 좀 더 완벽하게 만들어서 새 학기에 한번만 보급하면 큰 일이 나는 걸까? 중학교는 담당자가 주 5시간수업이라니까 그래도 좀 났겠지만,주 30시간이나 되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그 시스템만 붙들고 있으란 말인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교원정년도 고무줄처럼 줄였다늘였다. 교육제도도 왔다갔다하는데 까짓 수업 좀 빼먹는게 무슨 대수야?” 당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말로 차분하고 진지하게 교육의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교육행정 지시는 제일 나중에 해야 손해가 없다는 현장의 소리를 귀담아 듣기 바란다.우리 아이들에게그 폐해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졸속행정은 금물이다.
이런 저런 잡념이 오가는데 점심시간이 끝났다.영선이의마냥 행복한 얼굴을 보니 근심도 곧 사라진다.
◆김목 함평 월야초등 교사
2001-12-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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