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헤어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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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2-03 00:00
입력 2001-12-03 00:00
헤어짐도 만남처럼 아름답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헤어짐이 아름다우려면 만남과는 다른 종류의 노력이 필요하다.헤어짐에는 현명함과 미덕이 필요하다.특히 일하다가헤어지는 관계에 있어서 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입장에 있는 책임자는 좀더 세련되고솔직했으면 한다.적어도비굴하지 않았으면 한다.헤어지려는 연인사이에 서로를 탓하거나 변명하고 다른 핑계를 갖다 붙이고 할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것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쉽고 잘 통하듯이 비즈니스 관계도 헤어짐에 있어서진실됐으면 한다.빙빙 돌려서 말한다든지,상대방의 마음을 떠본다든지 혹은 비겁하게 다른 핑계를 대지 말았으면 한다.“그동안 고생 많았다.다음주까지만 수고해달라.사정이 이만저만해서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말을 해주면 얼마나 깔끔한가.해고를 당한 입장에서는 당장은 속상하고 섭섭하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내 마음이 정리되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른 일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한마디로 상처가 적을 것이라는 말이다.
작년에 애착을 갖고 진행하던 한 프로그램에서 개편을 기해 여자MC를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꾸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책임자가 나에게 교체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결국 나는 새로 그 프로그램을 맡게된 MC에 대한 기사를 신문을 통해 우연히 접하고는 내가 그 프로그램에서 잘리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후로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나에게 정식으로 그 일에 관해 거론한 사람이 없다.만약 그때 내가 그 신문기사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아마도 아무 것도 모른 채 녹화장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얘기지만 그 책임자가 너무도 미안한 나머지 나에게 교체사실을 차마 통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은 다른 핑계나 발뺌조차도 하지 않은 최악의 경우이다.
일을 같이 하자고 다가올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 대하면서 교체할 때는 냉정하게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이 바닥이 다 그렇지.한두번 겪어?” 하지만 이 바닥이 꼭 그래야 한단 말인가.좀더 친절하게 말해주면 안될까.처음처럼 끝도 명쾌했으면 좋겠다.‘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당당하고 속 깊은 프로와 만나고싶다.
임성민 방송인
2001-12-0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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