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8년만에 불거진 한약학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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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1-14 00:00
입력 2001-11-14 00:00
촉망받던 한약학과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내년 초 졸업예정 학생들의 집단 유급이 가시화돼 2002학년도 신입생모집이 불투명해졌다. 전국의 한약학과 학생들은 집단으로자퇴서를 제출한 데 이어 교수들과 함께 자진 폐과(閉科)도 신청해 놓은 터다.학생들은 한방의 의약 분업을 요구한다.한약사의 처방을 제한한 약사법의 개정과 한의원의 한약사 채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림도 없다.

문제는 멀리 1993년의 한·약분쟁으로 거슬러올라 간다.불씨는 당시 보사부가 댕겼다. 한약 선호도가 높아지자 ‘국민 건강’을 위한다며 약국내 한약장 설치를 금지한 약사법 시행 규칙을 고치려 했다.

한의사들의 반발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양측의 대립이격화되자 보사부는 약학대학에 한약학과를 두어 한약사만이 한약을 조제하도록 한다는 미봉책으로 얼버무렸다.한방의 의약 분업이 전제였음은 물론이다.

한약학과는 일약 최고의 인기학과 대열에 끼였다.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이 있는 종합대학에만한정됐기에 희소 가치가 대단했다.그러나 한방의 의약 분업이 불투명해지면서한때 ‘반짝 총아’는 일거에 사생아 신세로 전락했다. 설자리도 할 일도 없어졌다.역할 구분이 쉬웠던 양방에서 의약 분업의 진통을 떠올리면 한방의 분업은 지난하기만 하다. 한방에선 한의사와 한약사의 역할 구분이 가뜩이나 어렵지 않은가.

8년 전 ‘국민 건강’이란 허울로 흐트려 놓은 실타래가뒤늦게 우리를 옥죄고 있다.한약사들의 ‘이유있는 항변’에 우선 입막음을 하려던 조치가 빚어낸 불상사였던 셈이다.비전도 없이 이익 단체들에 의해 휘둘린 줏대없는 정책의 잘못된 결과를 보여 주는 사례다.

노동계가 이른바 겨울 투쟁(冬鬪)을 시작했다.한국노총의전국 노동자대회에 이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가 공동으로 잇달아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그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수단이어야 할 대규모 집회를 갖겠다는 소식을 들으며 극단주의가 초래하게 될 비뚤어진 결과들이 걱정스러워진다.

‘자기 앞만 지키려는’ 집단적 편협주의에 빠져 있지는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계의 요동 또한 위험 수위를 오르 내린다.30만 교사가운데 9만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전교조가 요구 사항이수용되지 않으면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것이다.선생님이 교단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말로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약사법을 개정하려 했던 보사부의 8년 전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이번에는 대학 교수들도 거리로 나섰다. 21세기에들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어렵게 직장·지역 건강보험을 통합한 건강보험법 등 이른바 개혁 입법들은 출발점으로 돌아갈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그러나 지난 행적에 대한 반발심에서 회귀시키려 한다면 재고해야 한다.남북협력기금을 집행하면서 10억원이 넘을 때마다 국회의 동의를받으라니 납득이 안된다.시골 개천에 다리 하나 놓아도 10억원이 드는 현실이고 보면 기금 운용의 자율성과 탄력성은 상실될 게 뻔하다.당장은 아니지만 불과 몇 년 후면 우리의 멍에가 돼 돌아오지 않겠는가.

요즘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거리는 ‘자기 요구’와‘자기 주장’들로 넘쳐난다.계층간·집단간 이해와 갈등이 뒤얽혀 가닥을 추려내기가 쉽지 않다.국정을 주관해야할 정치권은 내년 대선에 혼을 빼앗기고 있다.공직 사회마저 효율적인 시책을 마련해 시행하기보다는 실수 안하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1993년의 의·약분쟁 당시의 확대판 소용돌이를 보는 것 같다.정신을 차려야겠다.‘잘못 끼운 첫 단추’의 결과는 모두 우리의 짐이 되고 족쇄가 된다.이번 한약학과 파문을 여야가 국정의 책임을 공유해야 할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2001-11-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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