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길섶에서/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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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1-01 00:00
입력 2001-11-01 00:00
어릴 적 우물가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따던 때 얘기다.

새벽마다 내린 무서리에 감나무 잎파리들은 모두 떨어져 버렸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 홍시들이라니.짙푸르다 못해 쪽빛에 가까운 늦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익을 대로 익은 그 빠알간,그 홍시들은 어찌나 눈이시렸던지.

어른들은 기다란 장대로 홍시를 따서 삼태기에 담았고 우리 꼬마들은 실수로 땅에 떨어지는 홍시들을 다투었다.어른들은 감나무 윗가지에 달린 홍시 몇 개를 남겨두면서 ‘까치밥’이라고 했다.“까치도 먹어야 살 게 아니냐”면서.그때 우리는 장대가 짧아 그런 핑계를 대는 것이려니 했다.

세월이 흘렀다.뭘 좀 안다는 지식인들은 그때 우리 선대들이 남겨 놓았던 그 ‘까치밥’을 두고 ‘상생(相生)의 철학’과 ‘생태(生態)존중’을 들먹이며 설(說)을 풀었다.그러나 이제는 감나무가 통째로 ‘까치밥’이 됐다.감을 딸 일손이 없기 때문이다.그 지식인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장윤환 논설고문
2001-11-0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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