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선언] 변하지 않는 결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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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0-15 00:00
입력 2001-10-15 00:00
여기 저기 친구들 결혼식에 쫓아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문득 인생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 세대가 교체될 만큼의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변한것 없는 오늘의 결혼 문화가 유감이다.결혼 적령기가 있다는 생각이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결혼할 때누가 무엇을 어떻게 혼수 장만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내가경험한 20∼3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족 관계나 그 가족관계를 재생산하는 불합리한 결혼제도는 왜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한해 혼수시장의 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르고,결혼과 관련된 사업은 불황이 없다고들 한다.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빠진 느낌이다.대부분 20대에 속하는 이들이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할리 만무하고 보면 대부분 지출비용이 부모나 형제에게서 나온다는 말이다.
이 비용의 무게에 비례해 결혼제도의 변화는 더디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성장한 개인들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가정의 출발일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이 비용이란 생각을 해 본다.물론 변화가 전혀없는 것은 아니다.이런 결혼 관행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결혼할 시기와 결혼식의 형태를 선택하는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그렇지만 이런 변화의 노력이 소수 예외자들로 국한되고 마는 것은 현실적 여건과 관계가 깊다.기본적으로 필요한 최소 주거공간과 가재도구를 마련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재원이 들기 때문에 외부 지원 없이 출발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상당기간 열악한 생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가정은 편안한 안식처이며 사랑과 희생으로 결속된 공동체이지만,실제 가정 안에는 갈등과 좌절도있고, 분노와 미움 역시 존재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되면 결혼이라는 고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가족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감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은 별다른 사회적 안전망이 확립되어 있지 않던사회에서 “그래도 어려울 때는 가족밖에 없다”는 오래된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보험의식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수없을 듯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명절 때면 은근히 자랑하는 가족애란것이 별로 자랑할 만한 것도 못된다는 생각마저 든다.제도화된 안전 보장책이 허약한 데서 비롯된 보장적 성격의 가족애라면 보험 역할을 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가족 관계에서는 더이상 그 가족애는 발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 있는 혈연의 연결망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소외와 박탈을 경험하게 할 가족애이기 때문이다.가족을대신할 사회보장 정책의 필요가 결혼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을을 맞으면서 하게 된다.
허라금 이대교수·여성학
2001-10-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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